Pianist Hyeyoung Song

June 24, 2017

The 15th Van Cliburn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Filed under: Column — admin @ 6:23 pm

It was a joyful experience that I could be a part of the 15th Van Cliburn Piano Competition as a critic and press member. Congratulations to all the wonderful young pianists! Here I share with you some photos, interviews, and articles I wr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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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with Yekwon Sunwoo, the 15th Van Cliburn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Gold Medalist

Hyeyoung Song(HS): Please share with us your thoughts as the winner of the 15th Van Cliburn Competition.
Yekwon Sunwoo(YS): The physical endurance was a challenge and at times time would pass excruciatingly slowly. But I am thankful that I was able to finish strong and grateful to all the people who stood by me until the end.

HS: During this competition, was there a particular piece you were most satisfied with and least satisfied?
YS: Honestly, I think that there is always an area you wish you could have done differently in a performance. The job of a performer is to perform their very best and the process in which making the best performance is what brings happiness. Even though it is short, Schubert-Liszt’s Litanei auf des Fest Aller Seelen is one of the pieces that felt special to me while I was performing it.

HS: As the winner of the competition, you will probably become very busy. What changes do you think this will bring for you?
YS: I had better continue to perform my very best by working hard and avoiding laziness. It still hasn’t hit me that I am the winner of the competition….however, it is my dream to be a musician that always advances and matures, so I will do my best.

HS: In your lifetime, is there a certain piece that you would like to leave a recording of?
YS: Since Schubert is a composer that is very dear to me, I would like to record his late sonatas. There are so many, it’s hard for me to even choose one.

HS: You are the first South Korean to win the Van Cliburn Competition…could you say something to your fans and the young musicians back at home?
YS: Thank you to everyone who supported me and cheered me on. And I am thankful for those who always showed interest even with my shortcomings. I’m sure all performers feel this way since there is no such thing as a perfect performer. I believe there is always room for improvement and I will always try my best to move people’s hearts with my music. I’m grateful for your continued support.

Congratulations!

Interview by Hyeyoung Song

선우예권 반클라이번 콩쿨 우승 현장 인터뷰

송혜영(이하 송):제 15회 반 클라이번 콩쿨에서 우승하신 소감을 말씀해 주세요.
선우예권(이하 선우):짧은 시간들이 길게 느껴 질 정도로 체력적으로 지치기도 했는데요. 잘 마쳐서 감사하고, 지켜 봐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송: 이번 콩쿨의 곡 중 에서 본인이 가장 만족했던 곡은 무엇이고 가장 아쉬움이 남았던 곡이 있다면.
선우: 사실 연주에는 항상 아쉬움이 조금씩 있는 것 같아요. 연주자의 직업이라는 것이 최상의 연주를 하기 위해서 계속 살아 가고 그 과정을 통해 행복을 느끼는 것이니까요. 제가 특별하게 생각하는 곡 중의 하나가 슈베르트 가곡 리타나이(Schubert-Liszt, Litanei auf des Fest Aller Seelen) 를 좋아하는데 짧은 곡이지만 연주 때에도 특별하게 다가왔습니다.

송: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연주무대로 앞으로 무척 바빠지실텐데 어떤 변화가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시는지
선우: 다가오는 연주들을 최상의 조건들로 좋은 연주를 해야겠지요. 게을리 하지 않고 열심히 좋은 연주를 들려드리도록 해야 할 것 같아요. 아직은 우승했다는 실감이 나지 않는데…항상 발전하고 성숙해지는 진실한 음악가가 되는 것이 제 꿈이기 때문에 열심히 하겠습니다.

송: 본인이 일생을 통해서 꼭 남기고 싶은 레코딩이 있다면
선우: 소중하게 생각하는 작곡가는 슈베르트이기 때문에 슈베르트 소나타 후기 작품들을 남겨 보고 싶은데 그것은 너무 이른 것 같기도 하구요. 너무 많아서 하나만 고르기는 힘드네요.

송: 반클라이번 우승이라는 한국인으로서 역사적 수상을 하셨는데 고국의 팬들과 어린 음악가들에게 한 말씀 해 주세요.
선우: 응원해 주신 모든 분들께 너무 감사드리고, 부족할 수도 있는 연주를 항상 관심을 주신 분들께 감사드리고 싶어요. 모든 연주자들이 그렇게 느끼겠지만 완전한 연주는 없기 때문에 늘 부족하다 생각하거든요. 가슴에 무언가를 남길 수 있는 연주를 위해 노력하겠고 지켜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축하합니다!

Interview by Hyeyoung Song

 

[제 15회 반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쿨] “젊은 예술가들을 향한 찬가”

Filed under: Column — admin @ 6:16 pm

19400478_1256945377761253_8072017508801461012_o제 15회 반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쿨
“젊은 예술가들을 향한 찬가”

지난 월요일, 반 클라이번 피아노 콩쿨은 여섯 명의 최종 결선진출자를 발표하였다. 6월 10일까지 무대에 오를 피아니스트들은 한국의 선우예권 군과 홍콩의 레이첼 청, 러시아의 유리 페보린과 게오르기 챠이즈, 미국의 다니엘 슈와 케네스 브로버그이다. 아름다왔던 준결선 무대의 주옥같은 순간들과 대회의 이모저모를 전한다.

김다솔(한국)
슈베르트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 D. 960에서 음표 너머 작곡가의 메세지를 전달하는 내면적 표현력이 탁월한 연주를 들려 주었다. 지상에 발 붙힐 곳 없이 떠도는 슈베르트의 보헤미안적 숨결을 따라 부유하는 동시에, 감각에 의존하지 않는 또렷한 의식의 연주. 작곡가가 흠모하며 뿌리내렸던 클래시시즘과 무르익은 로맨티시즘의 숨막히는 대화, 악장 간의 절묘한 대조. 진정성과 측은지심을 담은 음색으로 청중을 울릴 수 있는 음악가, 밝은 앞날을 기대한다.

유통선(중국)
여린 체구에 등을 구부려 앉은 스물 한 살의 이 피아니스트가 있는 곳은 절대고독의 광야이다. 그 곳은 지상의 묵직한 고통도 천사의 콧노래도 가장 가깝게 듣는 곳이다. 자연스럽고 완벽하게 공명된 음색, 강요받거나 주입되지 않은 표현, 피아니스트적 고정관념에서 탈피한 보이싱…지독한 외로움의 댓가로 그에게 주어진 것은 꾸밈없는 자유. 그의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 연주는 상상력을 불러 일으키는 음색과 표현과 극도의 자연스러움을 유지한 채 모든 음에 색깔을 부여하고 말하게 하는 능력, 창조적인 원근법적 구성력을 지닌 명연이었다.

김홍기(한국)
특유의 음악적 유연함을 지닌 연주가이다. 유려하고 섬세한 모짜르트 협주곡에서 욕심없이 아름다운 표현과 음색이 빛났다. 뛰어난 테크닉과 사려깊은 섬세함으로 광란적 클라이맥스로 몰아가기 쉬운 칼 바인 소나타에서도 주제의 명징성과 아름다운 음색으로 끝까지 본질에 충실한 연주를 들려 주었다. 섬세한 결의 연주자, 그의 음악이 그 결을 따라 아름답게 꽃 피우길 기원한다.

게오르기 챠이즈(러시아)
음의 울림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탁월한 음악가. 모든 연주에서 노래하는 톤과 조화된 화성의 울림이 아름다왔다. 그 중에서도 그의 슈만은 백미. 완숙하고 정제되어 있으며 문학적인 우아함과 생기가 가득찬 연주. 미지의 향수와 동경을 불러 일으키며 잡히지 않을 듯 실체가 보이지 않는 로맨티시즘의 실체를 건져냈다.

선우예권(한국)
과연 진정성과 따뜻함이 살아 있는 감동적인 연주를 펼쳤다. 어떤 곡에서든 작곡가 자신이 되어 버리는 연주가. 그의 연주는 감성과 이성의 완전한 일치점을 지닌 연주가들만이 주는 특별한 안정감을 가지고 있다. 베에토벤 소나타에서는 아름다운 멜로디에 감추어진 작곡가의 치열한 내면적 갈등과 전투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담아 냈다. 음 하나에 담긴 고통과 환희를 읽어내는 연주에 청중들도 마지막 음이 영원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함께 했다. 주옥같은 순간이었다. 어떤 기교적인 부분조차 잘 친다는 생각보다 아름답다는 생각이 먼저 들게 만드는 연주자. 그래서 그의 스트라우스는 황홀했다. 프로코피에프에서는 풍성한 음악적 어휘력이 발휘되었다. 구조에 대한 비율감도 탁월하다.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레오나르도 피에르도메니코(이탈리아)
클라라 하스킬을 연상시키는 영롱함, 단순하고 우아함,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움을 가진 그의 모짜르트 협주곡 연주. 아무리 작은 소리에서도 왼손 화성의 각 라인이 노래하게 하는 그 투명성이 귀를 의심케 할 정도이다. 숙명적인 오케스트라와 피아노의 조화.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재회하는 순간에 열리는 가슴벅찬 세계. 아름다운 프레이징, 풍만한 테이스트가 돋보이는 연주가이다.

예선부터 감동적인 연주를 들려준 김다솔 군이 여섯 명의 최종결선진출자 명단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 많은 음악관계자와 청중들에게 아쉬운 이슈로 떠올랐다. 국가와 기업 차원의 후원과 더불어 음악을 사랑하는 발걸음이 하나 둘 모인다면, 우리의 귀한 재능들이 기회의 문 앞에서 좌절하거나 적어도 정정당당하게 겨룰 수 있는 기회를 빼앗기는 일로부터 이들을 지켜줄 수 있을 것이다.

작곡가 바르톡은 “경쟁(콩쿨)은 경주마를 위한 것이지 예술가를 위한 것이 아니다.” 라는 말을 남겼다.김다솔 군과 김홍기 군은 이제 돌아가 다시 기도하듯 피아노 앞에 앉을 것이다. 선우예권 군은 홀로 무대를 빛내며 훌륭한 연주를 선사하고 있다. 격려와 응원을 받아 마땅한 이 젊은 예술가들의 음악과 앞날을 함께 지켜 봐 주시길.

송혜영
피아니스트, 음악박사
웨더포드 컬리지 Artist in Residence

[제 15회 반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로의 초대”

Filed under: Column — admin @ 6:10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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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5일 부터 포트워스 배스홀에서는 제 15회 반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가 열리고 있다. 예선과 준준결선을 거쳐 김다솔, 선우예권, 김홍기 군이 12명이 선발되는 준결선 무대에 진출하였다. 한국인이 세 명이나 준결선에 진출한 것은 콩쿨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일 뿐더러 수준 높은 훌륭한 연주를 들려준 젊은 연주자들을 지켜보자니 기쁨과 대견함이 교차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자랑스러운 한국 연주자들과 더불어 주목받는 연주자들을 소개한다.

연주자 자신의 음악에 대한 경외와 기쁨을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달하는 소통적 연주를 들려 준 김다솔 군은 모든 참가자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지는 위촉작품에서 도발적이고 창의적인 해석으로, 라벨의 ‘밤의 가스파르’에서는 완숙한 테크닉과 색채감으로 청중의 귀를 사로 잡았다. 로맨티시즘과 신비주의, 복잡한 화성과 재즈 스타일의 리듬 등 작곡가의 다면적 정신세계를 드러내는 스크리아빈 소나타 4번에서는 완벽하게 말의 고삐를 지배하는 명수의 노련함이 돋보이는 연주를 했다. 특히 심미적 구성력이 돋보인 쇼팽의 24개의 전주곡에서는 육체적 병약함과 감정적 소용돌이 너머 작곡가의 영혼을 투명하게 건져내었다. 음악적으로 재구성된 24개의 시공간은 바하의 전주곡과 푸가에서와 같이 전우주적이었고, 흡사 영육이 분리 공존하는 베에토벤 후기 소나타에서의 성스러움을 불러 일으켰다. 곡 사이에는 의도적 대조나 연결 보다는 무심한 말줄임표를 던지고 떠났다가, 이내 차가운 현실의 벽 너머 반복적으로 울리는 낮은 음을 따라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곳으로 청중을 인도했다.

진지하고 심오한 예술성을 지니는 동시에 듣는 이를 완전히 설득해 버리는 연주를 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특히 이십 대 초반의 혈기 넘치는 젊은 연주자라면. 23살 미국 피아니스트 케네스 브로버그는 이것을 가능케 하는 명연을 선사했다. 투명하고 생명력을 가진 음색과 매 순간을 반짝이고 전율하게 하는 창조적 모멘텀, 특히 하프시코드 음색을 흉내낸 것이 아닌 청중의 귀에서 스스로 상상해서 듣게 만드는 그의 바하는 신기한 마법과 같았다. 명징한 주제와 흩어졌던 퍼즐들이 모여 장관을 이루게 하는 탁월한 구성력은 모든 스타일의 곡에서 다이나믹과 리듬의 왜곡없이 극적 클라이맥스로 몰아가는 힘을 발휘했다.

실연에 함께 하지 못 해 아쉬웠지만 인터넷 중계를 통해 본 선우예권과 김홍기 군도 심사위원과 청중들에게 각인을 남긴 훌륭한 연주를 들려 주었다. 선우예권 군은 정제된 음악성, 흠잡을 곳 없이 조화로운 비율감, 극적으로 몰아치는 힘, 모든 곡에 있어 사려깊은 따뜻한 표현으로 감동을 선사했다. 김홍기 군은 뛰어난 테크닉과 아름다운 음색, 폭넓은 음악성을 지닌 연주를 들려 주었다. 특히 평소 콩쿠르에서 자주 연주되지 않는 라흐마니노프 소나타 1번을 연주하며 로맨티시즘의 실타래를 지극히 자연스러우면서도 극적으로 풀어내어 무궁무진한 장래성을 인정받았다. 실제로 한 청중은 팔 십 평생에 이 멋진 곡을 처음 들어보게 된다며 연주자에게 감사를 표현하기도 했다.

이번 참가자 중 가장 아름다운 음색의 연주자라고 할 만한 이탈리아의 레오나르도 피에르도메니코, 바하에서 쇼스타코비치에 이르기까지 정통성과 창의성을 겸비한 예술성의 경지를 들려준 중국의 유통 선, 18세의 최연소 참가자이자 심오하고 강렬한 연주를 한 캐나다의 토니 양, 명료하고 시적인 표현력의 홍콩의 레이첼 청 등도 역시 주목해야 할 연주자들이다.

대회 내내 모든 연주를 들었다는 한 노신사는 각 연주자들의 이름 옆에 자신만의 성적을 기록하고 있던 종이 한 장을 내게 내밀었다. 하지만 체조나 다이빙과 같이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음악에 우열을 가린다는 것은 도무지 어렵다며 이내 곤란한 심정을 토로한다. 순수예술을 경쟁 구도에 놓는 모순적 폐해에도 불구하고, 국제무대에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제공받는 기회로서 콩쿨은 젊은 음악도에게 통과의례처럼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콩쿨 결과 자체가 그들의 음악인생에 어떤 의미가 될런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정작 콩쿨은 함께하는 청중들에게 더 큰 선물을 선사하는 축제가 된다. 음악적 진실 앞에 자신을 내던진 이들 앞에서 우리는 어느새 누가 더 잘하느냐가 아니라 더 진실되고 더 아름다운 음악을 향해 귀를 활짝 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휴머니즘의 본향을 향한 여정이 될 이 축제로의 초대장을 피아니스트 반클라이번의 말로 대신한다.

“위대한 클래식 음악에는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관한 무언가가 존재합니다. 인간의 소통에 있어 표현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대신하고 우리에게 심오함을 주고 의식을 고양하며 희망을 줍니다.”

클라이번 콩쿨은 6월 10일까지 계속되며 포트워스 배스홀과 cliburn2017.medici.tv 를 통해 들을 수 있다.

글 송혜영
피아니스트, 음악박사
웨더포드 칼리지 Artist in Residence

November 6, 2009

[11. 6. 2009] Brahms Piano Concerto No.2 by Joaquín Achúcarro

Filed under: Column — admin @ 9:46 pm

[송혜영의 음악의 날개 위에]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호아킨 아추카로의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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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SMU Caruth Auditorium에서 열린 피아니스트 호아킨 아추카로(Joaquín Achúcarro)의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연주회를 마치고 나오며, 시월이 다가기 전에 브람스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음악을, 또 인생을 그토록 깊이 관조해낼 수 있는 연주가에 의한 것이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브람스가 남긴 두 개의 피아노 협주곡 중 오늘 연주된 2번은, 총 연주시간만 40분 이상 소요되며, 다양한 캐릭터를 통해 클라이막스에 도달하기까지 기술적으로나 음악적으로 난해해서 피아니스트들에게 가장 어렵고도 동시에 가장 사랑받는 협주곡 중의 하나이다. 3악장의 구조를 가진 고전 협주곡의 틀을 벗어나 총 4악장 구성으로 되어있으며, 스케르초풍의 악장을 2악장에, 느린 악장을 3악장에 배치한 것도 주목할 만한 특징들이다. 브람스 특유의 처연한 정감과 심각함을 가지는 동시에 명랑하고 가벼운 이탈리아적 표정들이 다채롭게 나타나는 것은 작곡가가 이곡을 쓰는 동안 가진 두 번의 이탈리아 여행의 영향이 반영된 것으로 본다.

스페인 태생의 거장 피아니스트 호아킨 아추카로의 연주가로서의 명성은 음악계에 익히 알려져 있다. 1959년 리버풀 컴퍼티션에서 입상한 후 전세계적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그는 스페인에서는 기사작위를 받고 그를 사랑하고 후원하는 이들에 의해 ‘아추카로재단’이 결성될 정도로 살아있는 문화재로서 존경받는 음악가이다. 또 내년에 발매될 예정인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와의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연주와 그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필름이 이미 많은 기대를 받고 있다.

지난여름 나는 한 뮤직페스티발에서 그의 오랜 제자이자 리즈컴퍼티션 우승자인 피아니스트 알레시오백스(Alessiobax)와 루실 정(Lucille Chung)을 만나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들은 한 결 같이 아추카로 선생님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표현했다. 지금까지 일생에 가장 잘한 일이 있다면 그를 만난 일이었다고 주저 없이 말할 정도이다. 연주여행에서 돌아와 달라스에잠 시 머무는 기간에도 언제나 학교에 가장 먼저 오고 가장 나중에 떠나는 이가 그이며, 하루 8시간에서 10시간의 연습이 예외인 적이 없다. 그런 선생님을 보며 제자들은 연습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일흔이 넘은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수영과 여러 운동으로 건강을 성실히 관리하는 것도 왕성한 연주활동을 위한 것이듯, 그 삶의 모든 이유는 음악으로 귀결된다.

오늘의 연주에서 아추카로는 독주악기의 화려한 기교를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관현악과 피아노가 완벽하게 융화되기를 원했던 작곡가의 마음을 그대로 전달해주었다. 최근 전설적 피아니스트 알리샤데라로차(Alicia de Larrocha)의 부음을 들었을 때 잠시 그를 떠올렸었다. 두 사람은 같은 스페인 태생으로서 거의 매일 연락할 정도로 무척 가까운 사이였다고 한다. 격정적이다가도 이내 스며드는 선율이 잔잔히 떨렸던 것은 오랜 친구를 잃은 가슴을 달래는 바람이었을까.

앙콜로 들려준 스크리아빈(Scriabin)의 ‘왼손을 위한 녹턴’은 전반부의 힌데미스(Hindemith)에서 있었던 불균형한 오케스트라사운드의 잔영들을 한번에 빨아들여 정화시켜주었다. 열렬히 환호하는 청중들에게 답례를 표한 후 무대 뒤로 종종 사라지는 백발의 뒷모습은, 일생을 음악 외에 아무런 욕심 없이 살아온 ‘예술가’의 것이었다. 교정을 감도는 밤기운 사이,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낙엽이 흩날린다.

http://www.thekonet.com/news/articleView.html?idxno=6640

June 14, 2009

[6.14.09]An Interview with Yeol Eum Son, the Cliburn Silver Medalist

Filed under: Column — admin @ 9:13 pm

정도(正道)를 걷고자 하는 재능에 날개를 달다
[반 클라이번 콩쿨 은메달 입상, 피아니스트 손열음 인터뷰]
2009년 06월 13일 (토) 01:54:01 송혜영  

포트워스 배스 홀에서 열린 제 13회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쿨에서 한국의 손열음 양이 영예의 은메달을 수상했다. 금메달은 중국의 하우첸 장과 일본의 노부유키 츠지에게 돌아갔으며 동메달은 따로 수여되지 않았다. 역사상 유난히 한국 피아니스트들의 실적이 두드러지지 못했던 이 콩쿨에서 한국인으로는 지난 12회 은메달을 수상한 조이스 양 이래 두 번째 수상으로 한국음악계에 큰 경사가 아닐 수 없다. 시상식 이후  제대로 쉴 틈도 없이 더 바빠진 손열음 양을 만났다.

> 송혜영(이하 송): 정말 축하합니다. 이번 반 클라이번 콩쿨에 선 소감과 은메달 수상한 소감을 말해주세요.

손열음(이하 손): 이번에 준비하면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고, 연주 자체에 아쉬움이 없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보다 더 잘 할 순 없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그 전까지는 콩쿨이든 연주든 이렇게까지 해 본 적이 없거든요. 제 일생 최고로 했고, 그 점에 대해서 훌륭했다고 생각하구요.

> 송: 콩쿨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과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어요?

손: 가장 좋았던 순간은 타카쉬 콰르텟과의 연주였고, 일 차와 이 차 사이 하루 만에 스케줄이 갑자기 바빠지는 바람에 조금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 외엔 특별히 어려운 것은 없었구요.

> 송: 정말 대단해요. 특히 파이널에서는 삼 일 연속 연주해야 하는 살인적 일정을 소화해 냈어요. 부모님께서 많이 기뻐하시죠? 김대진 선생님, 아리에 바르디(Arie Vardi) 선생님 반응은 어떠세요?

손:  네, 특히 바르디 선생님은 콩쿨 중에도 거의 매일 전화해 주실 정도로 많이 신경써 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 엄마 아빠도 한국에서 웹중계로 보실 수 있어서 좋아하셨던 것 같아요.

> 송: 여기 도착해서 몇 주 동안의 일상은 어떻게 보냈어요?

손: 계속 놀러다녔어요(웃음). 호스트 패밀리 아주머니랑 파티다니고 많이 돌아다니고 그랬어요. 연습은 밤에 한 두 세 시간 정도? 독일에서는 보통 밤에 건물에서 아홉 시나 열 시까지 밖에 연습을 못하거든요. 그래서 주로 낮에 했었는데, 여기는 그런 시간 제한이 없는게 너무 좋아서 밤에 주로 했어요. 어차피 제가 꾸준히 연습하는 스타일이 아니구요. 막 쉬었다가 또 할 땐 막 하는 스타일이라서….

> 송: 타카쉬 콰르텟과 브람스 퀸텟 연주에서 멋진 호흡을 들려줬어요. 그로 인해 실내악 상도 받았고, 어땠어요?

손: 먼저 사람들이 너무 좋아서 깜짝 놀랬구요. 워낙 이름 있는 콰르텟이라…. 그리고 제가 음반을 통해서 타카쉬 콰르텟을 좋아했었거든요. 그 분들만의 색깔이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브람스 퀸텟을 많이 했었는데, 무대에서 같이 연주하는 어느 순간 이렇게 느꼈어요.  “ 어? 이거 정말 음반에서 듣던 색깔이 나온다” 그러면서 신기해 했어요.

> 송:  또 페이지 터너(Page turner) 없이 연주해서 화제가 됐었어요.

손:  제가 원래 페이지 터너를 싫어해요. 사무적으로 보이쟎아요. 다른 연주자들에게는 페이지 터너가 없는데 피아니스트만 쓰는 게 싫고, 음악이랑 상관 없는 사람이 옆에 있는 느낌이 싫어서요.

> 송: 가끔 두 페이지씩 넘기는 바람에 보는 사람들을 많이 놀래켰어요.

손: 전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사실 악보도 필요 없구요. 사람들이 놀랬다고 많이 그러시던데… 저는 그거 인식도 못 했거든요.(웃음)

> 송:  지휘자 제임스 콘론(James Conlon)과의 연주는 어땠나요?

손: 좋았어요. 그 분이 나오는 다큐멘터리 본 적이 있는데 내용도 좋아서 기대도 많이 했었어요. 실제 연주에서 오케스트라와 안 맞는 부분이 약간 있었지만 다른 친구들 보니까 그나마 제가 제일  잘 맞은 거였더라구요.(웃음) 시상식 마치고 파티에서 먼저 찾아 오셔서 다음에 꼭 같이 연주하자고 하셔서 놀랐고 좋았어요.

> 송: 이번에 열음 양 프로그램들이 아주 인상 깊었어요. 일차부터 파이널까지 바로크부터 현대까지 다양한 양식과 작곡가의 작품들로, 곡들의 조성 관계까지 고려해서 아주 유기적으로 섬세하게 짰는데… 어떤 아이디어들이 있었나요?

손: 일단 음악을 최우선으로 했구요. 내가 칠 수 있는 걸 마구 집어 넣는 게 싫었고, 진짜 음악회 프로그램처럼 하고 싶었어요. 일 차 때는 독일 중심의 친숙한 곡들을 넣었고(하이든, 슈만, 리스트), 18세기 이후 곡들로 짠 이 차 곡들은 치면서 제가 제일 기분 좋을 만한 곡들로, 파이널은 독주회와 두개의 콘체르토가 서로 대비되게 하려고 했어요.

> 송: 특히 바하, 슈베르트, 베에토벤으로만 이루어진 파이널 독주 프로그램은 콩쿨에서 대단한 ‘용기’였어요. 하지만 그 의도가 느껴졌죠. 콘체르토까지 이렇게 연결이 되는구나 하고…. 그럼 모든 프로그램은 기본적으로 본인이 짠 건가요?

손: 네, 독일에 제가 음악적으로 제일 신뢰하는 친한 친구가 있는데 이번에 도움을 많이 줬어요. 물론 선생님께서도 도와 주셨는데, 예를 들면 제가 드비시 프렐류드를 대여섯 곡 정도 치고 싶다고 말씀드리면 3번에서8번까지가  어떠냐고 조언해주시는 식으로요. 어쩔 땐 이건 아니다라고 하셔서 다시 짜기도 하구요.

> 송: 드비시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드비시 해석이 색달랐다고 생각해요. 어떤 영향을 받은 해석인가요? 소리에 대한 테이스트가 상당히 독특했어요.

손: 감사합니다. 제가 사운드 프로듀싱이나 칼라링은 좀 자신이 있는 편이라서…. 드비시는 듣는 입장에서도 워낙에 좋아하지만, 치는 입장에서도 드비시만큼 재미있는 게 없는 거 같아요. 제 선생님께서도 드비시 전곡 녹음을 하셨었고 일가견이 있으셔서 도움도 많이 받았구요. 예전에 독일에서 처음으로 드비시 프렐류드를 연주할 때였는데 연주 일 주일 전에 무작정 빠리로 갔어요. 도저히 프랑스에 대해 아무 것도 안 느껴 본 상태에서 치는게 싫어서요. 빠리에 삼 일 있다가 와서 연주했구요. 앞으로 기회가 되면 불어도 배워 보고 싶어요.

> 송: 멋져요. 스스로 칼라링에 자신이 있다고 했는데요. 제가 이번에 느꼈던 것도 열음양이 자신의 소리를 만들어 내는 연주를 하더라는 거에요. 본인이 생각하는 강점과 약점은 뭐라고 생각해요?

손: 강점은 제가 남들보다 여러 가지를 할 수 있는 거 같구요. 예를 들면 보통 기성 연주자들은 자기의 분야가 있는 경우가 많잖아요. 루푸가 라흐마니노프를 치지 않고 브렌델이 쇼팽을 하지 않는 것 처럼…. 그렇지만 저는 그런 건 없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계속 그런 식으로 하고 싶어요. 약점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너무 세세한 거라서…. 일단 무대와 연습할 때의 간극이 좀 더 없어졌으면 좋겠구요. 제가 디테일에 집착해서 그런지 무대에서 내려오면 스스로 만족하는 경우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너무 적어요.

> 송:독일에서의 음악 공부랑 생활은 어때요?

손: 너무 좋아요. 일단 선생님이 너무 좋으시구요. 이제 미국에 연주여행 다니느라고 공부할 시간이 줄어들까봐 그게 좀 걱정이긴 한데 어떻게든 잘 조절해서 공부를 계속 열심히 할 생각이에요. 처음에 독일로 간 이유가 선생님 때문이었는데, 지금은 독일 자체도 너무 좋아요.

> 송: 아리에 바르디 선생님께 주로 어떤 점을 배우고 있다고 생각해요?

손: 모든 점에서 너무 영향이 크구요. 걸어다니는 사전이라고 불리실 만큼 모르시는 게 없으시구요. 또 선생님이야 말로 영역 제한이 없으셔서 고전부터 현대까지 다 가리지 않고 하시는 분이시고, 그래서 저도 폭이 점점 넓어지는 것 같아요.

송: 이번 콩쿨의 프로그램 같은 것을 계획하고 실행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열음양의 레파토리가 워낙 넓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지요. 광대한 레파토리를 가지고 있는데 만약에 일생에 단 한 번의 전곡 연주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떤 작곡가의 작품으로 하고 싶어요?

손: 모짜르트 콘체르토? 아, 아니에요. 모짜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좋은 바이올리니스트와 그걸 연주하는 게 제 꿈이에요. 모짜르트는 워낙 제 인생이지만, 바이올린 소나타는 정말 완벽한 것 같아요. 피아노 소나타보다 훨씬 좋은 것 같아요. 바이올리니스트가 좋은 사람이 있으면 좋을텐데…. 요즘 찾고 있는데요. 아직 특별히 와 닿는 사람은 없어서 잘 모르겠어요.

송: 꼭 곧 찾길 바랄게요. 자, 이제 콩쿨은 끝났고 인생은 또 계속되겠지요. 열음 양은 삼 십 년 후 어떤 음악가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싶어요? 궁극적으로 어떤 음악가가 되고 싶은게 꿈이에요?

손: 요즘 드는 생각인데, 어차피 음악이란 것은 추상적이고 개인적인 것이고 사람이라면 다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는 거니까, 다수한테 인정받는 걸 목표로 하지는 않구요. 소수의 사람들이더라도 저와 함께 음악 이야기를 할 수 있고 테이스트를 교류할 수 있는, 또 제가 인정하는 테이스트를 가진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게 소수든 다수든 전혀 상관없구요. 그냥 그럴 수 있으면 좋겠어요.

> 송: 이제 미국에도 자주 오게 될 텐데 지금까지 정해진 연주계획 있나요?

손: 자세한 계획은 오늘 오후에 받을텐데요. 어제 포트워스 심포니와 연주로 칠 월 초에 와 줄 수 있냐고 제의를 받았는데 제가 마침 독일에서 연주가 있어서 못오게 되었고, 그 다음 주에 다른 연주로 미국에 오게 될 것 같아요.

> 송: 곧 또 보게 되겠네요. 세상에는 어려서 대단한 재능을 보이는 영재들이 더러 있어요. 열음양도 그들 중 한 명이었구요. 하지만 크면서 재능을 믿고 다른 길로 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이번에 연주들을 보면서 열음 양은 정도를 가려고 하는구나 라고 느꼈어요. 그래서 열음양  미래에 더 많은 기대를 하게 되요. 다시 한 번 축하합니다.

손: 감사합니다.

은메달과 실내악 상을 수상한 손열음 양은 상금 이만 삼천 불과 함께 앞으로 삼 년동안 미주 연주 매니지먼트와 하모니아 문디 미국 레이블로 음반을 내는 부상을 받게 된다. 자신의 타고난 재능에 의지하지 않고, 외롭고 힘들지만 묵묵히 정도를 걷고자 하는 한 젊은 음악인에게 날개가 달렸다. 다수에게 인정받기보다는 스스로에게 진실된 음악을 하고 싶다는 그의 어깨를 껴안으며 한 사람의 음악인으로서 이보다 더 든든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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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7, 2009

[6.5.2009]Hammerklavier Sonata by L.v.Beethoven and Nobuyuki Tsujii

Filed under: Column — admin @ 12:52 am

베에토벤과 노부유키 츠지의 햄머클라비어 소나타
[송혜영의 음악의 날개 위에]
 
 2009년 06월 05일 (금) 07:46:28 송혜영  www.hyeyoungsong.com  
 
    
 지난 주, 반 클라이번 피아노 컴퍼티션은 준결선전을 마치고 최종 결선진출자들을 발표하였다. 여섯 명의 결선 진출자들로는 자랑스런 한국의 손열음 양과 불가리아의 에프게니 보자노프, 일본의 노부유키 츠지, 이탈리아의 마리안젤라 보카텔로, 중국의 디 우와 하우첸 장으로, 6월 3일부터 7일까지 각각 50분가량의 독주회와 포트워스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두 개의 협주곡을 연주하게 된다.

완벽한 프로그래밍과 소리를 창조해 내는 매혹적인 연주를 들려준 손열음 양을 비롯해 최종 결선자들 모두는 빛나는 재능과 뚜렷한 개성을 지닌 장래가 촉망되는 연주자들이다. 이 중에서도 일본의 노부유키 츠지(Nobuyuki Tsujii) 군을 향한 이 곳 청중들의 축하는 더욱 특별할 수밖에 없다.

준결선전의 마지막 날이었던 5월 31일, 음악사에 기념비적 대곡인 베에토벤의 햄머클라비어 소나타(Hammerklavier Sonata)를 완주한 스무 살의 피아니스트 노보유키군은 놀랍게도 선천적 시각장애인이다. 어려서부터 놀라운 음악적 재능을 보인 아들을 위해 부모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접하게 했고 일곱 살이 되었을 즈음 스스로 피아노를 선택해서 집중해 왔다고 한다.

많은 불편이 따르는 점자악보를 사용하지 않고 그는 오로지 리코딩이나 실황연주를 들으며 새 음악을 배운다. 그가 먼저 듣고 선생이 연주해 주면 자신의 해석을 넣어서 따라 연주하는 것이 음악을 배우는 그만의 과정이다. 천재 피아니스트로서 그의 이름은 2005년 폴란드에서 열린 국제 쇼팽콩쿨에서 준결선에 올라 비평가 상을 받으며 국제무대에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예선에서 쇼팽의 열 두개의 연습곡 Op.10 등 이미 믿을 수 없이 훌륭한 연주를 들려주었지만, 많은 음악가들과 청중들은 과연 그가 어떻게 준결선에서 다른 연주자들과 호흡을 맞추어야 하는 실내악과 베에토벤의 햄머클라비어 소나타를 소화해 낼 것인가에 대해 의심과 걱정의 시선을 거두지 못했었다. 그 스스로 선택한 햄머클라비어 소나타는 베에토벤 소나타 중 가장 길고 기술적으로도 어렵기로 알려진 곡일 뿐 아니라 전혀 들을 수 없었던 시기에 쓰인 베에토벤의 심오한 예술혼을 스무 살의 어린 피아니스트가 어떻게 담아 낼 것인가에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모든 우려를 뒤로 한 채, 노보유키 군은 보지 못하는 대신 다른 연주자들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슈만의 피아노 오중주를 훌륭한 앙상블로 연주해 내었으며, 마치 베에토벤을 눈앞에 보는 것 같은 기적적인 햄머클라비어를 선사했다. 들을 수 없었던 작곡가와 보지 못하는 연주자에 의해 완성된 대작과 위대한 인간승리 앞에 많은 청중들은 감동과 경외의 눈물을 흘리며 끊임없는 기립박수를 보냈다. 반 클라이번은 노부유키 군에 대해 “그는 진정한 기적이다. 그의 연주는 치유하는 힘이 있다. 진정 성스러운 일이다.”고 말하며 경탄하였다.

눈을 감은 채 그의 연주를 들을 때마다 울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고요한 세계 저 너머 들려오는 그의 선율은 어린아이와 같이 부드럽고 따사롭게 내 영혼을 어루만진다. 평생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을 선사해 준 반클라이번 콩쿨에게 미리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결선진출자 모두에게 축하와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http://www.thekonet.com/news/articleView.html?idxno=6183

June 3, 2009

[5. 30. 2009]Cliburn Competition 2009 Preliminary Rounds

Filed under: Column — admin @ 8:56 am

2009 반 클라이번 콩쿨 예선전을 다녀와서
[음악의 날개 위에]
 
 2009년 05월 30일 (토) 03:23:56 송혜영  피아니스트 
  
포트워스 배스 홀에서 지난 주부터 열린 제 14회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쿨은 26일 1차 예선을 마치고 열 두명의 준결선자를 발표하였다. 이 중에는 한국의 김규연 양과 손열음 양이 포함되어 있다. 두 연주자는 28일부터 31일 까지 열릴 준결선에서 한 시간 가량의 독주회와 타카쉬 콰르텟(Takacs Quartet)의 실내악 연주 준비에 여념이 없다.
1962년 시작된 이래 랄프 보타펙, 세실 우세, 라두 루푸, 크리스티나 오르티즈, 알렉산더 토라제 등 많은 훌륭한 피아니스트들을 발굴해 낸 반 클라이번 콩쿨은 미국이 자랑하는 최대규모의 피아노 콩쿨이다. 올 해 반 클라이번 콩쿨에 초청된 서른 명의 연주자 중 네 명의 한국 연주자들은 예선에서 각자의 혼신을 다한 좋은 연주를 들려 주었다.

공교롭게도 예선 마지막 날 나란히 연주했던 김규연과 손열음의 예선 프로그램은 많은 유사점이 있었음에도 두 연주자는 각자의 뚜렷한 색채로 풀어 나갔다. 김규연은 하이든 소나타와 슈만의 클라이슬레리아나(Kreisleriana), 그리고 바르톡의 세 개의 연습곡 Op.18을 연주했다. 그의 깊은 감정표현과 자연스러운 타이밍은 나이를 가늠치 못하게 하는 음악적 우아함과 정직함의 결정체였다. 또 고난도의 테크닉을 요하는 바르톡에서는 대가적 피아니스트로서의 그의 무한한 가능성을 충분히 펼쳐 보여 주었다.

동일한 하이든 소나타와, 슈만의 환상소곡집(Fantasiestucke) Op. 12,리스트의 스패니쉬 랩소디를 연주한 손열음은 양식적, 구조적으로 통찰력있는 성숙한 연주를 들려 주었다. 삼 년 전 부터 독일에서 공부하고 있는 그의 연주는, 전반적으로 ‘생략’이 과감해 지고 예전에 비해 훨씬 큰 그림을 그려 나가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음악 앞에 타고난 재능과 열정까지 겸허히 내려놓는 고독한 투쟁을 무수히 거쳤으리라,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1781년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였던 모짜르트와 클레멘티와의 연주 대결로 잠시 거슬러 올라 가 보자. 주최자인 오스트리아 황제는 결국 모짜르트의 손을 들어 주었고, 그 후 클레멘티는 음악 외에 다른 일들을 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크게 상심했다고 한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모짜르트는 클레멘티로부터 배운 것이 없었지만 적어도 클레멘티는 모짜르트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을 것이라는 것이다.

사실 음악과 경쟁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고 남으로 부터 배우기 위해 두려움 없이 도전하는 영혼만큼 아름다운 것이 또 있을까. 각 국의 재능있는 젊은 피아니스트들이 베푸는 음악축제는 오는 6월 7일까지 계속된다.

http://thekonet.com/news/articleView.html?idxno=6165

 

November 1, 2008

[10.31.2008]Pianist Haesun Paik

Filed under: Column — admin @ 10:31 pm

‘멈추지 않는 열정으로, 피아니스트 백혜선’

[송혜영의 음악의 날개 위에]

제 13회 세계 피아노 교수법 컨퍼런스(The World Piano Pedagogy Conference)가 지난 주 나흘에 걸쳐 달라스에서 열렸다. 전미에서 모인 피아노 교육자들과 음악관계자들이 모인 이번 모임에는 반갑게도 한국을 대표하는 피아니스트 백혜선씨가 연주가로서 초청되었다. 그의 피아노 독주회를 마친 다음 날 호텔 로비에서 자연스럽고 솔직한 모습의 그를 만났다.

송혜영(이하 송): 어제 연주  마치고 어땠나?

백혜선(이하 백): 완전히 컨트롤이 있었던 연주 같진 않지만 굉장히 솔직하게 한 것 같다.

송: 뉴욕에서의 삶은 어떤가?

백: 두 아이들 키우느라 바쁘다. 한국을 떠나 무작정 간 곳이 뉴욕이 되었다. 여행을 많이 하는 편이어서 한국과 이동이 가장 쉬운 곳을 찾았다.

송: 한국에서의 교수직을 왜 그만 두었는지 이런 질문 많이 받았을 것 같다.

백: 미국에 온 지 벌써 삼 년이 되었다. 십 년 동안 서울대에서 가르치며 느낀 것은 선생이라는 사람은 학생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선생과 연주자, 이 두 가지가 공존하는 것은 한국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송: 선생과 연주자로서의 훌륭한 모델이 되어 줄 것을 기대했었는데 조금 슬프다.

백: 처음 뉴욕에 도착을 해서 같은 음악 하는 사람들 보니까 다들 거북이 같이 사는 것 같더라. 그런데 어느 순간 내 성격이 굉장히 급해지고 눈치 봐서 대충 하는 것에 있어 선수로 변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번 컨퍼런스에서도 많이 느끼지만 음악 하는 사람들이 유명하건 안 유명하건 간에, 본인이 하는 일에 대해서 너무나 열심히 개척하려고 하고 남이 뭘 하는지 관심을 가지고 본다. 한국 사람들은 지명도를 보고 따라 가지, 정말 그 안에서 배울 게 있다고 해서 따라가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그런 게 참 서글펐다. 그리고 적어도 내 인생은 그렇게 살지 말자, 그래서 그냥 다 버리고 왔다.

송: 인터뷰에서나 무대에서나 타고난 솔직함과 낙천성이 있는 것 같다.

백: 낙천적인 것도 있고 배짱도 있었고…. 또 내가 교회를 아주 열심히 다닌 사람은 아니지만, 분명히 하나님이 돌봐 주실 것이라는 그 믿음 하나 밖에는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열심히 살면 분명히 쓰러지지는 않을 거라는 어떤 확신이 있었던 것 같다.

송: 크리스챤으로서의 신앙이 어제 바하/ 부조니의 코랄 프렐류드를 첫 곡으로 선곡한 것에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나?

백: 그런데 내가 제일 못 치는 곡이 그 곡 같다. 왜 이렇게 안 되는지 모르겠다.(웃음) 굉장히 정신무장이 필요한 곡인데 일단은 그 곡들로 시작을 하면 마음이 편하고 어디에 맡길 수 있다는 것이 큰 위로가 된다. 원래 그렇지 않았었는데 몇 년 전부터 그런 곡들로 시작을 하려고 노력을 한다. 일단 감사나 부탁, 기도하는 마음으로 시작하는 게 낫지 않나. 듣는 사람도 편하고 치는 사람도 집중할 수 있고, 너무 좋은 것 같다.

송: 요즘도 레슨은 계속 받고 있는가?

백: 얼마 전까지 왜 나는 연주하는 사람으로서 녹음을 한다든지 누가 이야기 해주기 전까지 내 것으로 완전히 들을 줄 모르나, 그게 굉장히 큰 고민이었다. 프로 골퍼들에게는 늘 코치가 있다. 본인이 다 잘한다고 생각하면 그 때부터가 망하는 지름길 같다. 나도 삼십 대에는 ‘이제 선생이 필요 없어. 내가 이 만큼 배웠는데… 내가 원하는 걸 해야지.’라는 생각을 했었다. 브렌델, 안스네스, 포고렐리치, 키신과 같은 탑 클래스 음악가들도 늘 선생이랑 함께 살았다.

근래 포고렐리치 연주가 말이 안 되게 무너지고 있는 것은 선생이었던 부인이 돌아가시고 나서 어디 가서 칠 곳이 없어서이다. 키신? 엄마와 선생과 동행하지 않으면 연주를 안 다닌다. 안스네스는 일 년 동안 쉬면서 새 레파토아를 배우고, 가끔 노르웨이로 돌아가서 자기 선생이랑 집중적으로 공부해서 다시 나온다. 특히 피아노는 혼자 연주하는 악기이기 때문에 결국은 자기가 믿는 사람에게 가서 할 수밖에 없다. 나도 삼십대 말부터 자주는 아니지만 스승이신 러셀 셔먼 교수에게 가서 연주도 하고 가끔 망신도 당하고 오기도 한다. (웃음) 하지만 다른 데 가서 망신당하는 거 보다 낫지 않나. 자신의 거울이 될 그런 사람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송: 1994년 차이코프스키 콩쿨을 비롯해서 수많은 국제 콩쿨에서 승승장구 해 왔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콩쿨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당신에게 콩쿨이란 어떤 의미인가?

백: 사실 내가 콩쿨을 했던 이유는 놀러가는 게 주목적이었다. 오랜 동안 보스턴에만 있다 보니 어디를 도망가야지 그렇지 않으면 미쳐 버릴 것 같았다. 콩쿨이 유일한 변명거리였다. 특히 유럽에는 구경도 많이 하고 싶었고, 워낙 호기심이 많은 사람인지라 남들이 어떻게 하나 궁금했다.

내가 콩쿨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콩쿨이라는게 사실은 스포츠랑 똑같지 않은가. 일단 정신 무장이 잘 된 사람이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예술적이다’라는 것은 그만큼 ‘예민하다’는 것이다. 키신 같은 사람을 콩쿨 내 보내면 일 차도 통과 못 한다. 신경이 날카로운 사람일수록 콩쿨에서는 잘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래서 정말 잘 하는 이들은 예선에 다 떨어진다. 본선에 남는 이들은 대부분 제일 무난하고 예술적으로 조금 모자라도 선생님들 귀에 거슬리지 않는 사람들이다.

내가 콩쿨 다니면서 예술적으로 존경한 이들 중에서는 본선에 간 사람이 없다. 예를 들어 한국 피아니스트들 중에서 김원미씨를 가장 존경하는데, 같이 콩쿨 나갔을 때마다 김원미씨는 일 차에 다 떨어진다. 90년도 차이코프스키 콩쿨에 나가서 김원미씨, 안영신씨를 처음 만났는데, 한국사람들 중에서도 이렇게 괴짜들이 사는구나 했다. 한국사람으로 내가 아는 제일 예술적인 사람이 김원미, 안영신, 이 두 사람은 굉장히 존경하는 음악인들이다.

송: 전 세계적으로 통틀어서 존경하는 피아니스트는 누구인가?

백: 이태리 꼬모에서 공부하는 동안 만났던 앨리샤 데 라로차, 굉장히 가깝게 지냈는데 너무 좋은 분이셨다. 마르타 아르게리히는 언제 봐도 정말 대단한 것 같다. 남자 피아니스트는 누가 있을까. 내 선생님을 옆에서 보면 한결같고 존경스럽다.

송: 그 중에 제일 영향을 많이 미친 분이라면?

백: 셔먼 선생님이다. 그 분을 보고 있으면 말이 필요 없다. 여섯 시간에서 여덟 시간 연습을 하지 않는 날이 하루도 없다. 완전히 종교인의 삶을 사신다. 티칭을 제외하고는 무조건 연습시간이다. 점심도 안 드신다. 지금 연세가 여든이신데 쇼팽 마주르카, 베에토벤 소나타, 바하 잉글리쉬 조곡 전곡 녹음을 다 마치셨고, 다음은 슈만 프로젝트와 바하 평균율 전곡 녹음을 앞두고 계시다. 그런 선생님을 보고 있으면 내가 피아노를 친다고 할 수가 없다.

송: 셔먼 선생님께 음악적으로 어떤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는가?

백: 오픈 마인드 되는 거, 어떤 카테고리 속에 들어가지 않는 거. 그리고 기본적, 양식적 캐릭터를 유지하면서도 거기에 국한되지 않는, 법을 알면서도 자유하는, 그 두 가지가 공존하는 것을 제일 많이 배운 것 같다. 예술이라는 것은 늘 변화해야 하는 것이고, 자신이 어느 순간 편안한 자리에 있다고 느끼면 그것은 죽은 거나 마찬가지라 생각하라고 말씀하신다. 항상 변화하고 늘 깨어 있는 본보기를 보여 주셨기 때문에 늘 자극이 많이 되었던 것 같다.

송: 국제무대에서 활동하면서 제일 어려운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백: 아무래도 인종차별이다. 여기 와서도 느꼈다. 일단은 동양인이라는 것에서, 또 여자라는 점에서 사람들이 외면을 한다. 어디 가서든 느낀다. 어제 연주하기 전까지는 나한테 말을 걸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애당초 오기로 했던 세르게이 바바얀이 오지 않았고, 더군다나 러시안 남자 피아니스트를 대신해서 이름도 들어보지도 못한 동양여자가 와서 연주를 한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실망을 많이 한 상태였다. 그래서 사실은 어제 연주에 부담이 많았다. 생각하는 것보다는 나았던지 연주회 후에 나를 대하는 태도들이 완전히 다르다. 어제 저녁처럼 연주 후에 사람들이 내게 우르르 몰려들 때면 한 편으로는 씁쓸하다.

송: 베에토벤 소나타 Op.101을 오래 전 한국에서 들은 적이 있었고 이번에 다시 들었다. 어떤 특별한 애정이 있는 곡인가?

백: 그 곡은 내가 같이 울고 웃고 한 곡이다. 또 피아노 치는 사람들이 모인 컨퍼런스의 특성상 뭔가 본질적인 곡이 프로그램에 들어가야만 했다. 사실 리스트는 싫어하는 사람도 많고, 바하는 또 스페셜리스트가 있는 경우가 많고….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확신 있게 인정받을 곡으로는 베에토벤 만한 것이 없다. 내가 그렇게 할 수 있는 몇몇 소나타 중의 한 곡이었다.

송: 평소 자신만의 연습방법을 소개해 달라.

백: 물론 다른 연습도 하지만 악보를 보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큰 것 같다. 확실하게 자기 머릿속에 내가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계획이 있으면 그걸 따라 가게 되는 것 같다. 목적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내가 정말 그걸 하고 있는지 녹음을 해서 들어 보기도 한다.

송: 한국 학생들이 종종 상상력이 부족하고 음색이 빈약하다는 평을 듣는 것에 대해 조언을 한다면?

백: 한국 사람들은 독특하게 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굉장히 많은 것 같다. 자기만의 꿈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일단은 어른들이 모든 상상력을 죽이고 있다. 유태계 부모들은 아이가 남다른 것을 절대 겁내지 않는다. 아인슈타인, 스필버그의 유년 시절 일화들을 잘 알지 않는가. 예를 들어 우리는 아이를 학원을 보내 그림을 그리게 하지만, 유태계 부모는 선생님과 함께 전시회를 가게 한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네다섯 살 먹은 아이들이 전시회를 가는 것이 생활화 되어 있다.

송:  연주에 있어서 각 나라의 특성이 나타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백: 어디다 갖다 버릴 수 없다.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음악언어를 확실하게 이해를 하면 약간 이국적인 액센트가 들어가도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그리고 오히려 그게 특성으로 보여질 수 있다.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를 확실하게 모르고 음악언어라는 것을 이해를 하지 못한 채, 선생만 따라하는 경우에는 소위 ‘한국 사투리’가 나오게 되어 있다.

송: 앞으로 계획을 알려 달라.

백: 첼리스트 로렌스 레서와의 베에토벤 첼로 소나타와 변주곡 전곡 연주로 여러 곳의 콘서트와 레코딩을 앞두고 있다. 다음 달엔 캐나다를, 내년에는 한국에서의 연주와 페스티발, 또 뉴욕 메네스음대에서 주최하는 ‘인터내셔널 키보드 인스티튜트’에 다시 초청되어 가게 된다. 차이코프스키 콩쿨 입상 이후에 바로 한국에 들어가는 바람에 내 연주를 들어 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번 컨퍼런스에서와 같이 지금은 이렇게 나를 알리는 때인 것 같다.

자신의 연주를 불과 몇 시간 앞 둔 시각에도 백혜선씨는 다른 교수의 특강을 듣기 위해 열심히 교실들을 찾아다니느라 여념이 없었다. 음악을 향한 열린 마음과 겸손, 지치지 않고 변화를 꿈꾸는 그의 날개는 오늘도 더 멀리 비상하고 있다.

http://www.thekonet.com/news/articleView.html?idxno=5410

September 13, 2008

[9.13.2008]십 년의 선물

Filed under: Column — admin @ 8:24 am

십 년의 선물
[음악의 날개 위에]
2008년 09월 13일 (토) 01:46:20 송혜영  www.hyeyoungsong.com

비행기 창문 너머 점점 작아지는 세상을 내려다 보며 나는 이런저런 상념에 젖어 든다. 늦은 여름휴가를 위해 떠나는 오늘은 공교롭게도 내가 미국유학길에 올라 DFW공항에 내린 지 정확히 십 년이 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는 지난 시간들이 구름 위로 펼쳐지는 동안, 내 기억은 자꾸만 어느 한 곳을 향해서 더 빨리 날아가고 있다.

텍사스 게이츠빌, 여러 교도소 빌딩들이 마을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작은 도시, 그 곳은 아주 특별한 나의 제자들이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학위를 마쳐갈 즈음 가진 한 컬리지와의 인터뷰에서 학교 측은 대뜸 전혀 상상해 보지도 못 한 제안을 해 왔다. 교도소에서 재소자들에게 대학학점을 인정해주는 음악 강의를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치 거역할 수 없는 왕의 명령이 떨어진 것 같던 그 순간은, 내가 곧장 학기를 시작할 때까지 어떠한 망설임이나 두려움이 끼어드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교도소 정문에서 교실이 있는 건물까지 수많은 철문과 정원에 흐드러진 키 작은 꽃들이 생경하게만 느껴지던 첫 수업 날, 지나가던 죄수복 차림의 한 여자가 나를 발견하고 멀리서 환한 인사를 건넨다. 사람이 사는 곳에서 나는 온기가 새삼 고맙다. 교실에 먼저 도착하여 짧은 기도를 올린 다음 오래된 수도원 같은 그 곳을 찬찬히 둘러 본다.

얼마 후 하나 둘씩 줄을 지어 교실로 들어서는 내 학생들은 모두 하얀 옷에 하얀 운동화, 같은 모양의 안경을 쓰고 있다. 자리에 앉은 그 눈망울들이 처음 보는 내게 알 수 없는 신호를 보낸다. 출석부를 펴고 그들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죄수복을 벗은 영혼들이 비로소 제각각의 목소리를 내며 내게 응답해 온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첫 만남이 지금도 생생하다.

교도소라는 환경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일은 많은 제약이 따르는 것이 사실이다. 학생의 이름은 반드시 성으로만 불리도록 되어 있으며, 적절한 거리감 유지를 위해 사제 간의 자연스러운 친밀감의 표현조차 철저히 금지되어 있다. 또 아무리 작은 물건이라도 개인이 소지할 수 없는 규정에 따라, 수업에 참여하기 위해서 모든 학생은 책과 연필, 종이를 배분받고 다시 반납해야 하는 엄격한 검사대 앞에 서야만 했다.

하지만 그들의 열정과 의지는 오래된 에어컨의 소음 때문에 귀를 쫑긋 세우고 연신 부채질을 해야 했던 열악한 환경 속에서 더 강해지는 것 같았다. 일생에 단 한 번도 악기나 음악에 대해 배워 본 적이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학생들의 높은 학구열과 학습 성취도는 매번 나를 놀라게 했다. 자발적으로 스터디그룹을 짜서 방대한 양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카드로 정리하여 공부하던 그들을 바라보며 내가 느꼈던 뿌듯함을 무엇에 비견할 수 있겠는가.

음악의 원리를 배우며 인생을 이야기 하고 음악가의 삶을 통해 생의 가치를 확인하면서 그들은 시인이 되고 철학자도 되었다. 손뼉을 치며 다 같이 입 맞추어 노래하던 그 얼굴들에는 언제나 생의 기쁨이 넘쳐흘렀다. 출석을 확인하기 위해 간간히 수업을 방해하던 교도관이라도 없었다면, 그들도 나도 이 곳이 교도소라는 것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을 것이다.

가끔 그들이 견디어 온 삶의 고통과 무게를 그저 묵묵히 바라보기만 해야 한다는 것은 내게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끔찍한 자해의 흔적들이 뒤덮고 있는 여윈 팔을 모르는 척 지나치며, 세 살 때 헤어진 딸이 엄마의 전철을 밟지 않기만을 바라고 살아 왔는데 스무 살의 미혼모가 되어 자신을 면회 왔었다고 울먹이던 회한의 눈을 바라보며, 그들의 ‘어메이징 그레이스’가 점점 가늘게 잦아 들어가는 것을 느끼며, 나 혼자 뒤돌아서서 뜨거워진 눈시울을 숨겨야만 했던 적도 많았다. 아니다. 어쩌면 그들에게 할 수 있는 일이 음악 외에 아무 것도 없다는 무력감이, 내게 가르치는 일에 그토록 열심을 내도록 했는지도 모르겠다.

소박한 전자 키보드가 연주하는 멜로디에 금세 눈물을 글썽거리던, 이십 일 세기를 대표하는 음악가는 송선생님이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우며 환호하던 어린 아이와 같은 얼굴들…, 십 년을 넘긴 긴 수감생활 중에 이 수업이 자신에게는 한 줄기의 신선한 공기였다고 감사를 전하며 사라지던 온화한 백발의 뒷 모습과, 기말고사 시험지 한 모퉁이를 연애편지를 쓰듯 정성들여 축복과 감사의 메시지로 채워 전해주던 그 따뜻한 손…. 진정 그대들은 내 꿈이자 기도이며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었다.

높은 곳에 올라 보니 그들이 있는 곳이 더 가깝게 느껴진다. 어떻게 그들과 내가 텍사스 시골의 한 교도소에서 만나게 되었는지 십 년 전 나를 미국에 데려다 놓은 하늘은 알고 있었을까. 그 하늘은 오늘도 말없이 저 낮고 낮은 세상을 끌어안고만 있다.

http://www.thekonet.com/news/articleView.html?idxno=5198

 

June 28, 2008

[6. 27. 2008] Sing who I am

Filed under: Column — admin @ 4:53 pm

내가 누구인지 노래하라

[음악의 날개 위에]

– 뉴욕 필하모닉과 랑랑의 탄둔의 피아노 협주곡 연주회

지난 4월 나는 뉴욕 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번 여행은 나를 초청한 뉴욕대학의 호세 멘데즈 교수를 비롯한 다른 세 명의 피아니스트들과 함께 갖기로 한 연주회를 위해서였다. 호텔에 짐을 풀자마자 여행의 미미한 피로감과 연주에 대한 긴장감도 잊은 채 나는 곧장 링컨센터의 에버리 피셔 홀(Avery Fisher Hall)로 향했다.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피아니스트 랑랑(Lang Lang)이 작곡가 탄둔(Tan Dun)의 피아노 협주곡을 세계 초연할 것이라는 소식에 텍사스를 떠나기 전 미리 예매를 해 두었던 차였다. 뉴욕필과 중국을 대표하는 음악인들의 만남이라는 색다른 기대감을 반영하듯 연주장은 이른 시각부터 만석을 이루고 있었다.

랑랑을 위한  탄둔의 피아노 협주곡

작곡가 탄둔은 영화 ‘와호장룡’의 음악으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하면서 국제적 명성을 얻었고,  베이징 올림픽 음악감독으로 임명될 만큼 중국이 자랑하는 대표적 음악가이다. 풍부한 감정과 화려한 기교를 가진 피아니스트 랑랑은 국제콩쿨의 경력 없이 그 실력을 검증받은 신세대 피아니스트 중 하나이다. 뉴욕 필하모닉이 탄둔에게 위촉한 두 번째 작품이기도 한 오늘의 피아노 협주곡은 처음부터 피아니스트 랑랑을 염두에 두고 쓰인 작품이라고 해서 더욱 화제를 모았다.

독주악기로서의 위엄이 강조된 피아노의 오스티나토(Ostinato; 일정한 음형을 같은 성부에서 같은 음높이로 계속 되풀이 하는 기법)로 문을 연 1악장은 서정적 선율과 색채적 화성, 날카로운 타악기적 리듬의 결합이 미묘한 조화를 이루며 전개되었다. 또 중국 전통악기의 소리를 피아노와 오케스트라 악기로 완벽하게 재현해 내며 이국적 분위기를 성공적으로 표출해 냈다.

느린 템포의 2악장은 몽환적 선율이 마치 소리를 오감으로 표현한 듯한 감각적 오케스트레이션과 함께 매력적으로 결합되었다. 이미 영화음악으로 실력을 쌓은 작곡가의 소리에 대한 입체적 구상력이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피아니스트 랑랑의 풍부한 감성과 탄탄한 테크닉은 중국 전통음악의 농현기법을 모방한 듯한 피아노의 빠르고 가지런한 연타에서 더욱 빛을 발하였고, 그것은 동양화의 여백을 물들이는 물감의 붓놀림과 같이 악장의 아름다운 서정을 섬세히 완성해 나갔다.

3악장은 청중에게 작품에 대한 작곡가의 상상력과 의도를 가장 구체적으로 납득시켜준 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연주가 시작되기 전 비디오로 상영되었던 작품해설에서 탄둔은 동양의 전통적 소재인 음양의 이치를 손가락, 주먹, 팔꿈치 등의 인체부위를 이용한 무술(Martial Art)의 움직임을 통해 음악에 담아 보고자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잠잠히 어슬렁거리는 피아노와 긴박한 빠른 몸짓의 오케스트라가 동시에 팽팽히 공존하는 설정은 동양 무예의 양면성과 역설적 미를 표현하고자 한 것임이 분명했다. 이에 부응이라도 하듯 랑랑은 과장된 몸짓과 관객석을 쳐다보는 여유로움까지 연출하며 스스로 건반 위의 무도인이길 자청했다.

현악기 주자들이 일제히 현을 뜯으며 바람을 가르는 채찍소리를 재현할 때에는 마치 드넓은 평원을 배경으로 한 중국 영화의 한 장면 속에 들어 온 것과 같은 극적 효과를 가중시켰고, 이 거대한 서사극은 마침내 피아니스트의 어깨로 내려친 거대한 톤 클러스터(Tone Cluster; 근접한 몇 개의 음들을 한꺼번에 뭉쳐 연주할 때 발생하는 음향)와 함께 통쾌히 막을 내렸다.

정체성을 향하여

모든 인간이 그러하듯이, 음악가에게  있어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은 영원히 소멸하지 않는 화두일 것이다. 이십대 후반의 나이에 미국으로 건너 온 작곡가 탄둔은 뉴욕의 다운타운에서 다양한 문화를 접하며 비로소 세계적 관점에서의 중국인에 대한 정체성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스스로 ‘서양의 마르코 폴로’라 불리길 원한다는 그의 음악에는 동양의 것을 서양에 소개하고자 하는 투철한 사명감이 반영되어 있다. 

종종 중국 전통의상을 입고 무대에 오르는 피아니스트 랑랑은 어디에서나 조국에 대한 높은 자긍심을 숨기지 않는다. 곡예를 부리듯 현란한 연주스타일을 고집하는 그는, 호불호의 논란과 많은 음악적 비판을 감수하면서도 그 상품성만은 성공적으로 입증해 왔다.

음악가로서, 인간으로서, 한 국가의 국민으로서 정체성에 관한 끊임없는 탐구와 음악적 실험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당당히 노래한 그들이었기에 오늘의 갈채는 눈부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음악이 동양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문화상품의 한계에 표류하지 않으려면, 예술의 본질적 질문들에 대해 더 깊은 성찰을 거쳐야 할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http://www.thekonet.com/news/articleView.html?idxno=4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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