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anist Hyeyoung Song

June 28, 2008

[6. 27. 2008] Sing who I am

Filed under: Column — admin @ 4:53 pm

내가 누구인지 노래하라

[음악의 날개 위에]

– 뉴욕 필하모닉과 랑랑의 탄둔의 피아노 협주곡 연주회

지난 4월 나는 뉴욕 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번 여행은 나를 초청한 뉴욕대학의 호세 멘데즈 교수를 비롯한 다른 세 명의 피아니스트들과 함께 갖기로 한 연주회를 위해서였다. 호텔에 짐을 풀자마자 여행의 미미한 피로감과 연주에 대한 긴장감도 잊은 채 나는 곧장 링컨센터의 에버리 피셔 홀(Avery Fisher Hall)로 향했다.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피아니스트 랑랑(Lang Lang)이 작곡가 탄둔(Tan Dun)의 피아노 협주곡을 세계 초연할 것이라는 소식에 텍사스를 떠나기 전 미리 예매를 해 두었던 차였다. 뉴욕필과 중국을 대표하는 음악인들의 만남이라는 색다른 기대감을 반영하듯 연주장은 이른 시각부터 만석을 이루고 있었다.

랑랑을 위한  탄둔의 피아노 협주곡

작곡가 탄둔은 영화 ‘와호장룡’의 음악으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하면서 국제적 명성을 얻었고,  베이징 올림픽 음악감독으로 임명될 만큼 중국이 자랑하는 대표적 음악가이다. 풍부한 감정과 화려한 기교를 가진 피아니스트 랑랑은 국제콩쿨의 경력 없이 그 실력을 검증받은 신세대 피아니스트 중 하나이다. 뉴욕 필하모닉이 탄둔에게 위촉한 두 번째 작품이기도 한 오늘의 피아노 협주곡은 처음부터 피아니스트 랑랑을 염두에 두고 쓰인 작품이라고 해서 더욱 화제를 모았다.

독주악기로서의 위엄이 강조된 피아노의 오스티나토(Ostinato; 일정한 음형을 같은 성부에서 같은 음높이로 계속 되풀이 하는 기법)로 문을 연 1악장은 서정적 선율과 색채적 화성, 날카로운 타악기적 리듬의 결합이 미묘한 조화를 이루며 전개되었다. 또 중국 전통악기의 소리를 피아노와 오케스트라 악기로 완벽하게 재현해 내며 이국적 분위기를 성공적으로 표출해 냈다.

느린 템포의 2악장은 몽환적 선율이 마치 소리를 오감으로 표현한 듯한 감각적 오케스트레이션과 함께 매력적으로 결합되었다. 이미 영화음악으로 실력을 쌓은 작곡가의 소리에 대한 입체적 구상력이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피아니스트 랑랑의 풍부한 감성과 탄탄한 테크닉은 중국 전통음악의 농현기법을 모방한 듯한 피아노의 빠르고 가지런한 연타에서 더욱 빛을 발하였고, 그것은 동양화의 여백을 물들이는 물감의 붓놀림과 같이 악장의 아름다운 서정을 섬세히 완성해 나갔다.

3악장은 청중에게 작품에 대한 작곡가의 상상력과 의도를 가장 구체적으로 납득시켜준 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연주가 시작되기 전 비디오로 상영되었던 작품해설에서 탄둔은 동양의 전통적 소재인 음양의 이치를 손가락, 주먹, 팔꿈치 등의 인체부위를 이용한 무술(Martial Art)의 움직임을 통해 음악에 담아 보고자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잠잠히 어슬렁거리는 피아노와 긴박한 빠른 몸짓의 오케스트라가 동시에 팽팽히 공존하는 설정은 동양 무예의 양면성과 역설적 미를 표현하고자 한 것임이 분명했다. 이에 부응이라도 하듯 랑랑은 과장된 몸짓과 관객석을 쳐다보는 여유로움까지 연출하며 스스로 건반 위의 무도인이길 자청했다.

현악기 주자들이 일제히 현을 뜯으며 바람을 가르는 채찍소리를 재현할 때에는 마치 드넓은 평원을 배경으로 한 중국 영화의 한 장면 속에 들어 온 것과 같은 극적 효과를 가중시켰고, 이 거대한 서사극은 마침내 피아니스트의 어깨로 내려친 거대한 톤 클러스터(Tone Cluster; 근접한 몇 개의 음들을 한꺼번에 뭉쳐 연주할 때 발생하는 음향)와 함께 통쾌히 막을 내렸다.

정체성을 향하여

모든 인간이 그러하듯이, 음악가에게  있어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은 영원히 소멸하지 않는 화두일 것이다. 이십대 후반의 나이에 미국으로 건너 온 작곡가 탄둔은 뉴욕의 다운타운에서 다양한 문화를 접하며 비로소 세계적 관점에서의 중국인에 대한 정체성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스스로 ‘서양의 마르코 폴로’라 불리길 원한다는 그의 음악에는 동양의 것을 서양에 소개하고자 하는 투철한 사명감이 반영되어 있다. 

종종 중국 전통의상을 입고 무대에 오르는 피아니스트 랑랑은 어디에서나 조국에 대한 높은 자긍심을 숨기지 않는다. 곡예를 부리듯 현란한 연주스타일을 고집하는 그는, 호불호의 논란과 많은 음악적 비판을 감수하면서도 그 상품성만은 성공적으로 입증해 왔다.

음악가로서, 인간으로서, 한 국가의 국민으로서 정체성에 관한 끊임없는 탐구와 음악적 실험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당당히 노래한 그들이었기에 오늘의 갈채는 눈부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음악이 동양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문화상품의 한계에 표류하지 않으려면, 예술의 본질적 질문들에 대해 더 깊은 성찰을 거쳐야 할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http://www.thekonet.com/news/articleView.html?idxno=4867

June 14, 2008

[5.2.2008] NCTC Class photos, Spring 2008

Filed under: Class — admin @ 10:23 pm

        

 

[4.28.2008] WC Class Photos, Spring 2008

Filed under: Class — admin @ 10:16 pm

    

 

[4.21.2008] Renowned pianist to perform Monday at WC

Filed under: News — admin @ 10:12 pm

  http://wc.edu/index.php?module=article&view=503

 

 

[1.12.2008] A Letter for Youth

Filed under: Column — admin @ 10:09 pm

십대에게 띄우는 음악편지  
송혜영의 [음악의 날개 위에]

– 사랑하는 선에게

새해를 맞는 아침, 남편은 내게 짧은 연주를 부탁했다. 소박한 둘만의 연주회를 마치면서 나는 한 해를 아름다운 음악으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새삼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음악과 함께 하는 삶을 살게 해 달라고 기도했던 나의 십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였을까. 그 아침, 곧 열 여섯이 된다고 눈을 반짝거리며 웃던 네 생각에 오래 잠겼던 것은….

새해에 나는 훌륭한 음악회를 많이 찾아 다니는 네 모습을 꿈꾼다. 우리 주면을 조금만 둘러 보면 언제든지 좋은 음악회들의 소식을 들을 수 있다. 올 1월에 있을 안드레 와츠와 3월 랑랑, 4월 개릭 올슨과 안네 소피 폰 오터와 같은 유명 음악가들의 공연도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달라스 마이어슨 센터와 포트워스의 배스홀, 시립 오케스트라와 아트홀, 미술관과 공원, 그리고 여러 음악대학들의 홈페이지를 방문해 보면 다양한 공연 정보를 직접 얻을 수 있다. 음악은 언제나 가까운 곳에서 들어 줄 이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과, 직접 찾는 자들에게 그것을 향유하는 온전한 특권이 주어진다는 것을 네가 몸소 알아가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새해에는 평생 함께 하고픈 친구를 사귀듯 좋은 음반들을 네 곁에 많이 두도록 하여라. 바하의 첼로 무반주 조곡을 연주하는 거장 파블로 카잘스의 숨결로부터 음악이 인간에게 주는 순전한 위안을 네가 누려 보았으면 좋겠다.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는 에프게니 키신이 고작 열 두살 소년이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신은 불공평하다고 입을 삐죽거릴지도 모를 네 모습은 또 얼마나 사랑스러울까.

비 내린 오후 청명한 햇살에 비치는 물방울을 응시하는 너의 창가에 클라라 하스킬의 모짜르트가 들렸으면, 가끔씩 아무도 몰래 깊은 슬픔의 심연속으로 침잠하고플 때 차이코프스키가 널 홀로 외롭게 하지 않았으면 한다. 진실된 친구 한 사람이 우리 인생에 가지는 의미와 같이, 십대 때 이루어진 한 장의 명반과의 만남은 그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기도 한단다.

또 새해에는 비단 음악회나 음반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네 삶이 음악으로 가득 차길 바란다. 우리는 종종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혹은 책을 읽거나 미술 작품을 감상하면서 음악을 경험하기도 한다. 헤르만 헤세나 발자크의 소설을 읽다가 아마 쇼팽의 멜로디를 듣게 될지도 모른다. 만약 단테의 신곡이나 괴테의 파우스트를 읽었다면 리스트의 음악이 새롭게 이해되는 것을 경험할 것이다.

모네의 작품 속에 드비시가 황홀하게 펼쳐지고, 칸딘스키의 작품 속에 복잡한 쇤베르그의 음악이 형상화되는 순간을 너는 사랑하게 될 것이다. 신이 만든 모든 창조물과 인간의 예술작품 속에 존재하는 음악, 그것을 삶 속에서 깊히 경험하는 것만큼 즐겁고 값진 일이 또 있을까.  

마지막으로 새해에는 더 열심히 음악을 배우고 더 많이 나누기를 당부한다. 음악을 제대로 배운다는 것은 우리의 시간과 열정을 온전히 음악에 바치는 것을 의미한다. 음악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혀 치열하게 고민하고 소중한 땀방울을 흘려본 이라면 어느 새 그의 삶도 아름답게 가꾸는 법을 체득하게 되리라. 내게는 어렸을 적 어머니가 흥얼거리시던 슈베르트가, 선생님이 부르시던 멘델스죤이 지금도 생생하다.

불꺼진 음악실에 모여 매일같이 음악회를 열던 여고시절, 친구들과 함께 나누었던 음악의 순수한 떨림은 나이든 내 가슴에 다시는 같은 모습으로 찾아 오지 않을런 지도 모른다. 한 사람이 음악을 사랑하게 되기까지는 반드시 함께 음악을 나누어 준 고마운 이들이 있다. 그리고 나는 네가 누군가에게 바로 그 고마운 사람이 되어 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사랑하는 선아! 음악이 얼마나 네 영혼을 맑게 채색하고 생을 더없이 풍성하게 만들어 줄 지 생각만 하여도 나는 벌써 가슴이 뛴다.

‘그대 아름답고 즐거운 예술이여!/ 마음이 울적하고 어두울 때/ 그 아름다운 멜로디를 듣고 있으면/ 언제나 즐거운 기운 솟아나/ 마음의 방황 사라집니다./ 누구의 멜로디일까요./ 꿈결 같은 그 멜로디에/ 내 마음 어느덧 불타는 정열의 나라로 들어 갑니다./ 때로는 그대 하프에서 한숨이 흘러 나오고/ 때로는 그대의 달콤하고 성스러운 화음이/ 더 좋은 시절의 하늘을 내게 열어 보여 주었습니다./ 그대 아름다운 예술이여!/ 나는 그대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그대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먼 훗날 드려질 네 삶의 진정한 고백이 슈베르트의 노래와 함께 어우러 진다면…. 새해 아침, 나는 그렇게 행복한 네 꿈을 꾼다.

  http://www.thekonet.com/news/articleView.html?idxno=3896

 

 

[12.10.2007] Class photos, Fall/2007

Filed under: Class — admin @ 10:06 pm

    

Music Fundamentals/NCTC, Musicianship/WC

 

[12.6.2007] Piano201 photos, UT Austin

Filed under: Class — admin @ 10:04 pm

                    

 

 

 

 

[12.7.2007] Chopin’s Piano Lesson

Filed under: Column — admin @ 10:01 pm

 

쇼팽의 피아노 레슨  
[음악의 날개 위에]

2007년 12월 07일 (금) 11:54:33 송혜영  www.hyeyoungsong.com  

    
    ▲ 쇼팽  
  
폴란드 태생의 프레데릭 쇼팽(Frederic Chopin, 1810-1849)은 19세기가 낳은 위대한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이다. 그의 제자들의 증언에 기초하여 쓰인 책 ‘Chopin : Pianist and Teacher : as seen by his Pupils’ 는 교육자로서의 쇼팽의 면모를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피아노의 시인’ 쇼팽은 과연 어떤 선생이었을까? 그의 레슨실을 노크해 보자.

교육자 쇼팽

쇼팽에게 가르치는 일은 작곡과 함께 그의 서른아홉 해의 삶에서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는 교육의 중요성과 선생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잘 인지하고 있었다. 꾸준히 작곡활동을 하면서도 그는 매일 이른 아침에서 오후의 반나절을 평균 하루에 다섯 명 정도의 문하생을 가르치는데 사용했다.

쇼팽은 항상 정확한 시간에 단정한 차림으로 나타나 레슨을 시작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어린이나 초보자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 쇼팽에게 배우게  되기까지는 아주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일단 받아들인 학생과 그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까지 함께 나눌 정도로 가까웠다.

쇼팽은 학생들의 개인적, 음악적, 기술적 문제들에 대한 인격적 이해와 신뢰관계를 중요하게 여겼다. 그는 학생들의 자신감을 북돋아 주는 방법과 적절한 때를 잘 알고 있었다. 학생의 심리적 상태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지닌 그는 “너 자신이 되어라. 네가 느끼는 대로 자신을 표현하라. 나는 전적으로 무엇이든지 네가 하길 원하는 것을 신뢰한다. 스스로 만든 이상을 자유롭게 따르라.”는 말들로 필요할 때마다 그들을 격려했다.

이러한 진심어린 격려는 학생들로 하여금 표현의 기쁨과 예술적 자유를 충분히 경험하도록 만들었다.  
또 그 자신이 훌륭한 피아니스트였던 쇼팽은 학생의 어깨 뒤에서 설명하는 것 뿐 아니라 곡의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연주해 주기도 했다. 그것을 본 제자들은 쇼팽보다 완전하고 위대한 피아니스트는 없을 것이라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학생들이 스스로 곡을 분석하고 작품의 분위기를 정하도록 유도했다. 이렇듯 철저한 직업정신과 교육적 혜안을 지닌 쇼팽의 교육자로서의 명성은 전 유럽과 러시아에 널리 퍼졌다.    

쇼팽의 가르침

쇼팽은 학생들이 암보로 연주하는 것보다 정확하게 악보를 보고 연주하도록 권장했다. 빈틈없이 실수와 잘못을 지적해 내느라 종종 두 세 마디를 완성시키기 위해 한 시간을 보내는 일도 허다했다. 특히 그는 손가락 번호에 대해 무척 엄격하였다.

학생들에게 손가락 번호를 한 번에 제대로 익혀서 다시는 바꾸는 일이 없도록 가르쳤다. 또 쇼팽은 손가락이나 손목만으로 연주하던 동시대 다른 음악가들과 달리 팔 전체를 이용하는 테크닉을 강조했다. 그는 항상 천천히 부드럽게 꽉 찬 톤으로 연습하길 요구했다. 그는 “마치 벨벳 손으로 건반을 쓰다듬듯 해야 한다. 건반을 때리지 말고 느껴라”라고 종종 말했다.

실제 레슨에서 쇼팽이 무엇보다도 강조했던 것은 듣는 훈련을 통해 귀를 정제시키고 근육의 조절과 이완을 돕는 정신적 연습이었다. 쇼팽의 유일한 피아노 선생이었던 지브니(Zywny)는 바이올리니스트였고 사실상 그 자신은 독학으로 피아노를 배운 셈이었다. 그래서 그는 누구보다도 연습에 있어서 손가락의 기계적 반복을 경계했다.

듣기와 터치의 섬세함을 발굴하는 것은 항상 그의 첫 레슨의 중대한 목적이었다. 그는 학생들에게 오래 연습하지 말라고 말하곤 했다. 오히려 양서를 읽고 미술 작품을 감상하거나 산책할 것을 권했다. 쇼팽의 교수법에서 테크닉은 수단, 그 이상의 것이 아니었기에 기술이나 거대한 울림만으로 뽐내는 연주를 결코 허락하지 않았다.  

제자들의 눈에 비친 쇼팽은 엄격한 가르침과 따뜻한 격려를 적절하게 배합한 투철한 소명감의 선생이었다. 또 연주와 창작에 대한 식지 않는 열정으로 훌륭한 음악가로서의 삶을 몸소 보여준 학생들의 롤모델이자, 불필요한 전통에 얽매이기보다는 새롭고 창조적인 방법으로 개개인의 학생에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발굴한 창조적 교육자였다.

얼마 전 어스틴에서 한 학생의 반가운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수 년 전 내 피아노 레슨을 수강했던 공대생이었다. 지금 대학원 공부 중인 그는 겨울 방학동안 어떤 곡을 연습해 볼까 하고 오랜 만에 피아노 앞에 앉았다가 불현듯 내 생각이 나서 연락을 했다고 한다.

세월이 흐른 후 먼지 쌓인 피아노 뚜껑을 열면서, 우연히 음악을 듣다가 내 얼굴을 떠올릴 수많은 그들에게 더 나은 선생이고 싶다는 열망으로 오늘 나는 오래된 쇼팽의 레슨실을 나선다.  

http://www.thekonet.com/news/articleView.html?idxno=3686

 

 

[11.3.2007]The Pianists in New York City

Filed under: Column — admin @ 9:56 pm

음악이 맺어준 만남  
[송혜영의 음악의 날개위에] 뉴욕 여행에서 만난 피아니스트들

2007년 11월 03일 (토) 01:09:13 송혜영  www.hyeyoungsong.com  

지난 주 나는 개인적인 중요한 행사를 위해 뉴욕을 다녀왔다. 거대한 도시 문명 깊숙이 흐르는 정신적 물줄기를 찾아 거닐다 나는 감사하게도 많은 아름다운 영혼들과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과 내가 있던 그 곳에는 언제나 음악이 함께 있었다.

호세  멘데즈(Jose Ramon Mendez)

     
    ▲ 호세 멘데즈(Jose Ramon Mendez)  
  
뉴욕에서의 이튿날, 친애하는 스승이자 좋은 음악적 동지인 피아니스트 호세 멘데즈 교수와의 재회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UT 어스틴(Austin)에서 실내악 교수와 박사과정 학생으로 만난 우리의 인연은 그가 뉴욕대학(NYU)으로 옮긴 후에도 계속되어 왔던 차였다. 피아니스트 호세 멘데즈는 차세대 스페인 연주가들의 선두주자로 꼽힌다. 유년시절 스페인의 유명한 음악교사인 아버지로부터 배운 그에게 음악은 공기처럼 익숙하고 물과 같이 자연스럽다. 미국 유학시절에는 호로비츠의 제자였던 바이언 재니스(Byron Janis)에게 배우면서 폭넓은 레파토아를 섭렵하였고, 피아노 테크닉을 깨우치기 위해 인체학, 물리학 등 다방면의 학문을 깊이 연구하며 스스로의 이론을 정립해 낸 냉철한 지성가이기도 하다.

그는 오랜만에 보는 우리 부부를 극진히 환대해 주었다. 음악에 대한 진지한 토론과 서로에 대한 진심어린 격려가 오가고, 각자 연주생활에서 겪은 재미난 에피소드를 나누며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몰랐다. 그와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나는 머릿속에 “균형”이라는 화두를 떠올렸다. 지성, 감성, 그리고 테크닉의 조화로운 균형감각을 지닌 그의 음악은, 고독한 예술가이자 건강한 생활인으로서의 두 삶을 잘 조율해내는 그와 닮아 있기 때문이다. 바빴던 일상을 떠나 마음이 통하는 이들과 와인잔을 기울이며 실컷 음악 이야기를 풀어내는 동안, 내 삶은 어느새 아름다운 하모니를 연주하고 있었다.  

안드라스 쉬프(Andras Schiff)

     
    ▲ 안드라스 쉬프(Andras Schiff)  
  
카네기 홀에서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쉬프의 베에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 포스터를 보고 내 가슴은 요동쳤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태생의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쉬프의 베에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는 2004년 유럽에서 먼저 시작되었고, 2009년 음반 녹음을 앞두고 이번 시즌에 북미지역 순회 연주로 열리게 된 것이었다. 기악음악의 신약성서라 불리는 베에토벤 피아노 소나타를 쉬프의 연주로 듣는다는 벅찬 기대감으로 가득 메운 청중들로 인해 카네기 홀은 연주 시작 전부터 술렁거렸다.

쉬프는 작곡가의 의도와 본질에 무서우리만큼 집중하면서 음을 통해 차원의 창조적 재구성을 이루어내고 있었다. 또 고전 소나타의 완벽한 구조와 베에토벤의 혁신적 음악적 요소들의 역설을 통해 작곡가의 심오한 내면세계를 투명하게 드러내 주었다. 그의 학구적인 집중력과 고도의 장인정신은 내게 마치 베에토벤의 그것을 보는 듯 했다. 답례로 연주된 슈베르트 또한 너무나 훌륭해서 청중들은 자리를 뜨지 못하고 열렬한 환호와 갈채를 보냈다. 이틀 후 있을 두 번째 독주회를 놓쳐야 한다는 아쉬움을 남기고 자리를 떠나야 했지만, 그의 음악과 함께 한 시간은 내게 여행지에서 가장 값진 보석을 캔 기쁨이었다.  

레온 플라이셔(Leon Fleisher)

     
    ▲ 레온 플라이셔(Leon Fleisher)  
  
예기치 않은 만남이 있어 여행은 더욱 즐겁다. 쉬프의 연주회의 시작을 기다리던 시간, 내 바로 옆 좌석에 자리를 잡은 노신사는 바로 피아니스트 레온 플라이셔였던 것이다. 천재 음악가로서 성공가도를 달리던 레온 플라이셔는 37세의 나이에 갑자기 근육긴장이상증으로 오른손의 마비가 시작되어 30년 이상 왼손만으로 연주한 불운의 피아니스트였다. 하지만 이에 굴복하지 않고 지휘자로, 교육자로 존경받는 음악가의 반열에 우뚝 선 거장이며 몇 해 전부터는 의학의 도움으로 다시 양손으로 연주활동을 재기 하면서 그는 음악과 삶으로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사실 레온 플라이셔 그 자신은  슈나벨의 제자로서, 베에토벤-체르니-레셰티츠키-슈나벨로 이어지는 계보를 잇고 있다. 나의 스승이신 UT 어스틴의 그레고리 앨런(Gregory Allen) 교수는 바로 레온 플라이셔의 수제자로서, 내가 앨런 선생님과 공부했었다는 이야기를 하자 “너도 내 제자로구나!” 라며 반가움을 숨기지 않았다. 그의 말은 베에토벤의 7세대 째 위치에 내가 서 있음을 새삼 상기시켰다. 터전을 떠나 온 곳에서 내 음악적 뿌리를 다시 만나게 되다니, 그것은 희열이었다.

만남은 아름답다. 여행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꽃 한 송이, 풀 한포기는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번 여행이 그 어느 때보다 풍성했던 것은 바로 음악이 맺어준 만남의 신비 때문이었다. 텍사스에 돌아와 보니 가을이 성큼 다가와 있다. 떠날 때 다시 만나게 되는 인생의 겸허한 진리 앞에 마음을 비우고 이 가을 매일 여행을 연습하고 싶다.

 http://www.thekonet.com/news/articleView.html?idxno=3410

 

 

[10.2.2007]The Weatherford Democrat

Filed under: News — admin @ 9:51 pm

 

  http://www.weatherforddemocrat.com/community/local_story_275110801.html
  http://www.wc.edu/index.php?module=article&view=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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