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anist Hyeyoung Song

September 13, 2008

[9.13.2008]십 년의 선물

Filed under: Column — admin @ 8:24 am

십 년의 선물
[음악의 날개 위에]
2008년 09월 13일 (토) 01:46:20 송혜영  www.hyeyoungsong.com

비행기 창문 너머 점점 작아지는 세상을 내려다 보며 나는 이런저런 상념에 젖어 든다. 늦은 여름휴가를 위해 떠나는 오늘은 공교롭게도 내가 미국유학길에 올라 DFW공항에 내린 지 정확히 십 년이 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는 지난 시간들이 구름 위로 펼쳐지는 동안, 내 기억은 자꾸만 어느 한 곳을 향해서 더 빨리 날아가고 있다.

텍사스 게이츠빌, 여러 교도소 빌딩들이 마을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작은 도시, 그 곳은 아주 특별한 나의 제자들이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학위를 마쳐갈 즈음 가진 한 컬리지와의 인터뷰에서 학교 측은 대뜸 전혀 상상해 보지도 못 한 제안을 해 왔다. 교도소에서 재소자들에게 대학학점을 인정해주는 음악 강의를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치 거역할 수 없는 왕의 명령이 떨어진 것 같던 그 순간은, 내가 곧장 학기를 시작할 때까지 어떠한 망설임이나 두려움이 끼어드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교도소 정문에서 교실이 있는 건물까지 수많은 철문과 정원에 흐드러진 키 작은 꽃들이 생경하게만 느껴지던 첫 수업 날, 지나가던 죄수복 차림의 한 여자가 나를 발견하고 멀리서 환한 인사를 건넨다. 사람이 사는 곳에서 나는 온기가 새삼 고맙다. 교실에 먼저 도착하여 짧은 기도를 올린 다음 오래된 수도원 같은 그 곳을 찬찬히 둘러 본다.

얼마 후 하나 둘씩 줄을 지어 교실로 들어서는 내 학생들은 모두 하얀 옷에 하얀 운동화, 같은 모양의 안경을 쓰고 있다. 자리에 앉은 그 눈망울들이 처음 보는 내게 알 수 없는 신호를 보낸다. 출석부를 펴고 그들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죄수복을 벗은 영혼들이 비로소 제각각의 목소리를 내며 내게 응답해 온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첫 만남이 지금도 생생하다.

교도소라는 환경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일은 많은 제약이 따르는 것이 사실이다. 학생의 이름은 반드시 성으로만 불리도록 되어 있으며, 적절한 거리감 유지를 위해 사제 간의 자연스러운 친밀감의 표현조차 철저히 금지되어 있다. 또 아무리 작은 물건이라도 개인이 소지할 수 없는 규정에 따라, 수업에 참여하기 위해서 모든 학생은 책과 연필, 종이를 배분받고 다시 반납해야 하는 엄격한 검사대 앞에 서야만 했다.

하지만 그들의 열정과 의지는 오래된 에어컨의 소음 때문에 귀를 쫑긋 세우고 연신 부채질을 해야 했던 열악한 환경 속에서 더 강해지는 것 같았다. 일생에 단 한 번도 악기나 음악에 대해 배워 본 적이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학생들의 높은 학구열과 학습 성취도는 매번 나를 놀라게 했다. 자발적으로 스터디그룹을 짜서 방대한 양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카드로 정리하여 공부하던 그들을 바라보며 내가 느꼈던 뿌듯함을 무엇에 비견할 수 있겠는가.

음악의 원리를 배우며 인생을 이야기 하고 음악가의 삶을 통해 생의 가치를 확인하면서 그들은 시인이 되고 철학자도 되었다. 손뼉을 치며 다 같이 입 맞추어 노래하던 그 얼굴들에는 언제나 생의 기쁨이 넘쳐흘렀다. 출석을 확인하기 위해 간간히 수업을 방해하던 교도관이라도 없었다면, 그들도 나도 이 곳이 교도소라는 것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을 것이다.

가끔 그들이 견디어 온 삶의 고통과 무게를 그저 묵묵히 바라보기만 해야 한다는 것은 내게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끔찍한 자해의 흔적들이 뒤덮고 있는 여윈 팔을 모르는 척 지나치며, 세 살 때 헤어진 딸이 엄마의 전철을 밟지 않기만을 바라고 살아 왔는데 스무 살의 미혼모가 되어 자신을 면회 왔었다고 울먹이던 회한의 눈을 바라보며, 그들의 ‘어메이징 그레이스’가 점점 가늘게 잦아 들어가는 것을 느끼며, 나 혼자 뒤돌아서서 뜨거워진 눈시울을 숨겨야만 했던 적도 많았다. 아니다. 어쩌면 그들에게 할 수 있는 일이 음악 외에 아무 것도 없다는 무력감이, 내게 가르치는 일에 그토록 열심을 내도록 했는지도 모르겠다.

소박한 전자 키보드가 연주하는 멜로디에 금세 눈물을 글썽거리던, 이십 일 세기를 대표하는 음악가는 송선생님이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우며 환호하던 어린 아이와 같은 얼굴들…, 십 년을 넘긴 긴 수감생활 중에 이 수업이 자신에게는 한 줄기의 신선한 공기였다고 감사를 전하며 사라지던 온화한 백발의 뒷 모습과, 기말고사 시험지 한 모퉁이를 연애편지를 쓰듯 정성들여 축복과 감사의 메시지로 채워 전해주던 그 따뜻한 손…. 진정 그대들은 내 꿈이자 기도이며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었다.

높은 곳에 올라 보니 그들이 있는 곳이 더 가깝게 느껴진다. 어떻게 그들과 내가 텍사스 시골의 한 교도소에서 만나게 되었는지 십 년 전 나를 미국에 데려다 놓은 하늘은 알고 있었을까. 그 하늘은 오늘도 말없이 저 낮고 낮은 세상을 끌어안고만 있다.

http://www.thekonet.com/news/articleView.html?idxno=5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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