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anist Hyeyoung Song

August 18, 2017

Protected: [WC Piano, Fall/20017] Schedu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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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7, 2017

[8.4.2017] 피아니스트 한동일 인터뷰- 생의 4악장, “가장 인간적으로, 가장 음악적으로”

Filed under: Column — admin @ 1:35 pm

피아니스트 한동일 인터뷰
생의 4악장, “가장 인간적으로, 가장 음악적으로”

포탄을 토해 내는 전투기와 총구에 스러져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길 가에서 초컬릿을 팔던 소년이 있었다. 12살의 나이에 운명처럼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그는 한국의 첫 음악신동이자 세계무대에서 활동하는 일세대 피아니스트가 된다. 달라스에서 시작할 인생의 4악장에 대한 기대로 가득한 피아니스트 한동일 선생님을 만났다.

송혜영(이하 송): 달라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어떻게 이 곳으로 오시게 되셨는지요.
한동일(이하 한): 참으로 긴 인생의 여정이었다. 미국과 한국 일본 등에서 오랜 가르침을 마무리 하고 은퇴할 곳을 찾던 중 달라스의 수준 높은 문화 수준에 감동 받았고 더 연주하고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이렇게 돌아왔다. 한국 이발관 가고 맛집 가는 지금의 삶이 꼭 집에 온 것 같다.

송: 전쟁과 가난의 한 복판에서 음악 공부를 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습니까.
한: 교회 지휘자이시던 아버님 덕분에 우리 집에서 교회 찬양대가 연습하는 것을 보면서 자랐다.내게 음악적 귀가 있다고 판단하신 아버님이 직접 피아노를 가르치셨다. 서울교향악단의 타악기주자이시던 아버님을 따라 카르멘, 파우스트, 콩쥐팥쥐 등을 보고 자랐다. 제주도까지 피난을 다니는 과정에서는 피아노가 없어서 풍금으로 연습했다. 아들을 반드시 피아니스트로 키우고자 하신 아버님은 내 손을 잡고 아무리 먼 거리라도 피아노가 있는 댁으로 옮겨 다니며 동냥 연습을 시키셨다. 95세에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연주때문에 떠나야 하는 아들을 향해 “빨리 가 보라우”하시며 손을 흔들며 재촉하던 것이 내 아버님의 마지막 모습이다.

송: 12살의 어린 나이에 미국에 오시기까지 아버지의 극진한 교육열과 앤더슨 장군과의 운명같은 만남이 있으셨습니다.
한: 내가 연습하던 모습을 우연히 지켜보던 한 미군 장교가 쇼에서 연주를 제안을 했다. 연주를 마치자 마자 나를 미국에 데려가겠다고 후원을 약속하시며 나타난 분이 계셨으니 바로 앤더슨 장군이었다. 나에게 모든 직업과 교육의 기회를 주신 분, 그 분은 나의 미국 아버지이시다. 돌아가시기 전 “아들아, 나는 너에게 기회를 주었지. 하지만 너는 그 모든 일을 스스로 해 내지 않았느냐. 자랑스럽다.” 고 말씀하셨다. 내 삶은 너무나 많은 축복을 받았고 미국과 앤더슨 장군께 너무나 큰 빚을 졌다.

송: 미국에서 첫 스승이신 줄리어드의 마담 로지나 레빈(Rosina Lhevine)과의 만남은 어떠셨습니까.
한: 쇼팽의 올림 다 단조 왈츠를 틀린 음 없이 깔끔히 쳐 낸 것을 내심 자랑스러워 하고 있는 나에게, “얘야, 다음에 네가 너희 엄마를 다시 만났을 때, 엄마는 너를 어떻게 만지실 것 같니?” 라고 물으시며 때리는 것이 아니라 부드럽고 사랑스럽게 쓰다듬는 손의 움직임을 보여 주셨다. 그렇게 그녀와의 첫 레슨부터 나의 톤, 캐릭터, 음악적 보이스가 변화되었다.

송: 러시안 학파이신 마담 로지나 레빈과 헝가리안 피아니스트 일로나 카보쉬(Ilona Kabos)와 공부하셨습니다. 선생님의 음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나 경험이라면 무엇을 꼽으시겠습니까.
한: 카보쉬 선생님은 내게 모든 유럽의 지휘자들을 소개 시켜 주신 분이다. 마담 레빈은 나를 아들같이 키우셨다. 여러 대가의 연주회에 데려 가시고 새로운 세계를 직접 보고 듣게 해 주셨다. 그 시절 들었던 길레스의 리스트 소나타, 아슈케나지 프로코피에프 소나타 6번, 리히터의 드비시 영상, 호로비츠의 스크리아빈 소나타 9번… 그들의 연주를 보고 듣는 것, 내게 가장 훌륭한 음악학교는 바로 뉴욕이었다.

송: 1965년 레벤트리트 (Leventritt) 콩쿨에서 우승하면서 한국인으로서 첫 번째 국제 콩쿨 우승자가 되셨습니다.
한: 베에토벤 3번, 프로코피에프 2번,라흐마니노프 3번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했다. 결선 무대에 섰을 때 심사위원들은 놀랍게도 베에토벤 소나타 3번의 2악장(느린 악장)을 연주해 달라고 요구했다. 연주를 마칠 무렵 객석으로 부터 발자국 소리가 점점 가까와오고, “땡큐 베리 머치”라고 말하며 내 등을 두드린 사람은 바로 레온 플라이셔였다. 콩쿨의 결선에서 느린 악장을 연주했던 것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서 더 나은 음악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한 소중한 경험이었다.

송: 가르칠 때 학생들에게 가장 강조하시는 점은 무엇입니까.
한: 학생들에게 기계가 아닌 아주 인간적인 방법으로 음악을 바라보라고 말한다. 곡에 대한 올바른 감정과 인식을 먼저 가져야 한다. 내 지인들과 음악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마더 테레사에 대한 이야기로 깊어지기도 한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루어지는 만남과 경험, 그 모든 것이 음악의 부분이다. 인간과 인간성(Humanity)에 대한 이해가 먼저 있어야 한다. 음악적 이슈는 바로 인간적 이슈이다.

송: 자신의 인생을 회고록으로 남기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어떤 인생의 4악장을 꿈꾸십니까.
한: 나의 그저 작은 한 사람일 뿐이다. 나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것에 소중한 시간을 쓰고 싶지 않다. 나의 스승이 내게 알려준 중요한 메세지들을 남겨 주고 싶다. 누구라도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이것이 나의 오래된 꿈이자 나의 가장 풍족한 은퇴이다.

*피아니스트 한동일은 오는 8월 25일 7시 30분 리챠드슨 St Barnabas Presbyterian Church에서 Chamber Music International 기금 모금 연주회를 가진다. 슈베르트 가장조 소나타 2악장, 쇼팽의 녹턴과 발라드 4번을, 피아니스트이자 화가인 부인과 함께 모짜르트, 드보르작, 포레를 연주한다. (www.chambermusicinternational.org)

글 송혜영
피아니스트, 음악박사
Artist in Residence, Weatheford Colle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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