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anist Hyeyoung Song

November 1, 2008

[10.31.2008]Pianist Haesun Paik

Filed under: Column — admin @ 10:31 pm

‘멈추지 않는 열정으로, 피아니스트 백혜선’

[송혜영의 음악의 날개 위에]

제 13회 세계 피아노 교수법 컨퍼런스(The World Piano Pedagogy Conference)가 지난 주 나흘에 걸쳐 달라스에서 열렸다. 전미에서 모인 피아노 교육자들과 음악관계자들이 모인 이번 모임에는 반갑게도 한국을 대표하는 피아니스트 백혜선씨가 연주가로서 초청되었다. 그의 피아노 독주회를 마친 다음 날 호텔 로비에서 자연스럽고 솔직한 모습의 그를 만났다.

송혜영(이하 송): 어제 연주  마치고 어땠나?

백혜선(이하 백): 완전히 컨트롤이 있었던 연주 같진 않지만 굉장히 솔직하게 한 것 같다.

송: 뉴욕에서의 삶은 어떤가?

백: 두 아이들 키우느라 바쁘다. 한국을 떠나 무작정 간 곳이 뉴욕이 되었다. 여행을 많이 하는 편이어서 한국과 이동이 가장 쉬운 곳을 찾았다.

송: 한국에서의 교수직을 왜 그만 두었는지 이런 질문 많이 받았을 것 같다.

백: 미국에 온 지 벌써 삼 년이 되었다. 십 년 동안 서울대에서 가르치며 느낀 것은 선생이라는 사람은 학생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선생과 연주자, 이 두 가지가 공존하는 것은 한국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송: 선생과 연주자로서의 훌륭한 모델이 되어 줄 것을 기대했었는데 조금 슬프다.

백: 처음 뉴욕에 도착을 해서 같은 음악 하는 사람들 보니까 다들 거북이 같이 사는 것 같더라. 그런데 어느 순간 내 성격이 굉장히 급해지고 눈치 봐서 대충 하는 것에 있어 선수로 변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번 컨퍼런스에서도 많이 느끼지만 음악 하는 사람들이 유명하건 안 유명하건 간에, 본인이 하는 일에 대해서 너무나 열심히 개척하려고 하고 남이 뭘 하는지 관심을 가지고 본다. 한국 사람들은 지명도를 보고 따라 가지, 정말 그 안에서 배울 게 있다고 해서 따라가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그런 게 참 서글펐다. 그리고 적어도 내 인생은 그렇게 살지 말자, 그래서 그냥 다 버리고 왔다.

송: 인터뷰에서나 무대에서나 타고난 솔직함과 낙천성이 있는 것 같다.

백: 낙천적인 것도 있고 배짱도 있었고…. 또 내가 교회를 아주 열심히 다닌 사람은 아니지만, 분명히 하나님이 돌봐 주실 것이라는 그 믿음 하나 밖에는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열심히 살면 분명히 쓰러지지는 않을 거라는 어떤 확신이 있었던 것 같다.

송: 크리스챤으로서의 신앙이 어제 바하/ 부조니의 코랄 프렐류드를 첫 곡으로 선곡한 것에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나?

백: 그런데 내가 제일 못 치는 곡이 그 곡 같다. 왜 이렇게 안 되는지 모르겠다.(웃음) 굉장히 정신무장이 필요한 곡인데 일단은 그 곡들로 시작을 하면 마음이 편하고 어디에 맡길 수 있다는 것이 큰 위로가 된다. 원래 그렇지 않았었는데 몇 년 전부터 그런 곡들로 시작을 하려고 노력을 한다. 일단 감사나 부탁, 기도하는 마음으로 시작하는 게 낫지 않나. 듣는 사람도 편하고 치는 사람도 집중할 수 있고, 너무 좋은 것 같다.

송: 요즘도 레슨은 계속 받고 있는가?

백: 얼마 전까지 왜 나는 연주하는 사람으로서 녹음을 한다든지 누가 이야기 해주기 전까지 내 것으로 완전히 들을 줄 모르나, 그게 굉장히 큰 고민이었다. 프로 골퍼들에게는 늘 코치가 있다. 본인이 다 잘한다고 생각하면 그 때부터가 망하는 지름길 같다. 나도 삼십 대에는 ‘이제 선생이 필요 없어. 내가 이 만큼 배웠는데… 내가 원하는 걸 해야지.’라는 생각을 했었다. 브렌델, 안스네스, 포고렐리치, 키신과 같은 탑 클래스 음악가들도 늘 선생이랑 함께 살았다.

근래 포고렐리치 연주가 말이 안 되게 무너지고 있는 것은 선생이었던 부인이 돌아가시고 나서 어디 가서 칠 곳이 없어서이다. 키신? 엄마와 선생과 동행하지 않으면 연주를 안 다닌다. 안스네스는 일 년 동안 쉬면서 새 레파토아를 배우고, 가끔 노르웨이로 돌아가서 자기 선생이랑 집중적으로 공부해서 다시 나온다. 특히 피아노는 혼자 연주하는 악기이기 때문에 결국은 자기가 믿는 사람에게 가서 할 수밖에 없다. 나도 삼십대 말부터 자주는 아니지만 스승이신 러셀 셔먼 교수에게 가서 연주도 하고 가끔 망신도 당하고 오기도 한다. (웃음) 하지만 다른 데 가서 망신당하는 거 보다 낫지 않나. 자신의 거울이 될 그런 사람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송: 1994년 차이코프스키 콩쿨을 비롯해서 수많은 국제 콩쿨에서 승승장구 해 왔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콩쿨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당신에게 콩쿨이란 어떤 의미인가?

백: 사실 내가 콩쿨을 했던 이유는 놀러가는 게 주목적이었다. 오랜 동안 보스턴에만 있다 보니 어디를 도망가야지 그렇지 않으면 미쳐 버릴 것 같았다. 콩쿨이 유일한 변명거리였다. 특히 유럽에는 구경도 많이 하고 싶었고, 워낙 호기심이 많은 사람인지라 남들이 어떻게 하나 궁금했다.

내가 콩쿨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콩쿨이라는게 사실은 스포츠랑 똑같지 않은가. 일단 정신 무장이 잘 된 사람이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예술적이다’라는 것은 그만큼 ‘예민하다’는 것이다. 키신 같은 사람을 콩쿨 내 보내면 일 차도 통과 못 한다. 신경이 날카로운 사람일수록 콩쿨에서는 잘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래서 정말 잘 하는 이들은 예선에 다 떨어진다. 본선에 남는 이들은 대부분 제일 무난하고 예술적으로 조금 모자라도 선생님들 귀에 거슬리지 않는 사람들이다.

내가 콩쿨 다니면서 예술적으로 존경한 이들 중에서는 본선에 간 사람이 없다. 예를 들어 한국 피아니스트들 중에서 김원미씨를 가장 존경하는데, 같이 콩쿨 나갔을 때마다 김원미씨는 일 차에 다 떨어진다. 90년도 차이코프스키 콩쿨에 나가서 김원미씨, 안영신씨를 처음 만났는데, 한국사람들 중에서도 이렇게 괴짜들이 사는구나 했다. 한국사람으로 내가 아는 제일 예술적인 사람이 김원미, 안영신, 이 두 사람은 굉장히 존경하는 음악인들이다.

송: 전 세계적으로 통틀어서 존경하는 피아니스트는 누구인가?

백: 이태리 꼬모에서 공부하는 동안 만났던 앨리샤 데 라로차, 굉장히 가깝게 지냈는데 너무 좋은 분이셨다. 마르타 아르게리히는 언제 봐도 정말 대단한 것 같다. 남자 피아니스트는 누가 있을까. 내 선생님을 옆에서 보면 한결같고 존경스럽다.

송: 그 중에 제일 영향을 많이 미친 분이라면?

백: 셔먼 선생님이다. 그 분을 보고 있으면 말이 필요 없다. 여섯 시간에서 여덟 시간 연습을 하지 않는 날이 하루도 없다. 완전히 종교인의 삶을 사신다. 티칭을 제외하고는 무조건 연습시간이다. 점심도 안 드신다. 지금 연세가 여든이신데 쇼팽 마주르카, 베에토벤 소나타, 바하 잉글리쉬 조곡 전곡 녹음을 다 마치셨고, 다음은 슈만 프로젝트와 바하 평균율 전곡 녹음을 앞두고 계시다. 그런 선생님을 보고 있으면 내가 피아노를 친다고 할 수가 없다.

송: 셔먼 선생님께 음악적으로 어떤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는가?

백: 오픈 마인드 되는 거, 어떤 카테고리 속에 들어가지 않는 거. 그리고 기본적, 양식적 캐릭터를 유지하면서도 거기에 국한되지 않는, 법을 알면서도 자유하는, 그 두 가지가 공존하는 것을 제일 많이 배운 것 같다. 예술이라는 것은 늘 변화해야 하는 것이고, 자신이 어느 순간 편안한 자리에 있다고 느끼면 그것은 죽은 거나 마찬가지라 생각하라고 말씀하신다. 항상 변화하고 늘 깨어 있는 본보기를 보여 주셨기 때문에 늘 자극이 많이 되었던 것 같다.

송: 국제무대에서 활동하면서 제일 어려운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백: 아무래도 인종차별이다. 여기 와서도 느꼈다. 일단은 동양인이라는 것에서, 또 여자라는 점에서 사람들이 외면을 한다. 어디 가서든 느낀다. 어제 연주하기 전까지는 나한테 말을 걸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애당초 오기로 했던 세르게이 바바얀이 오지 않았고, 더군다나 러시안 남자 피아니스트를 대신해서 이름도 들어보지도 못한 동양여자가 와서 연주를 한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실망을 많이 한 상태였다. 그래서 사실은 어제 연주에 부담이 많았다. 생각하는 것보다는 나았던지 연주회 후에 나를 대하는 태도들이 완전히 다르다. 어제 저녁처럼 연주 후에 사람들이 내게 우르르 몰려들 때면 한 편으로는 씁쓸하다.

송: 베에토벤 소나타 Op.101을 오래 전 한국에서 들은 적이 있었고 이번에 다시 들었다. 어떤 특별한 애정이 있는 곡인가?

백: 그 곡은 내가 같이 울고 웃고 한 곡이다. 또 피아노 치는 사람들이 모인 컨퍼런스의 특성상 뭔가 본질적인 곡이 프로그램에 들어가야만 했다. 사실 리스트는 싫어하는 사람도 많고, 바하는 또 스페셜리스트가 있는 경우가 많고….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확신 있게 인정받을 곡으로는 베에토벤 만한 것이 없다. 내가 그렇게 할 수 있는 몇몇 소나타 중의 한 곡이었다.

송: 평소 자신만의 연습방법을 소개해 달라.

백: 물론 다른 연습도 하지만 악보를 보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큰 것 같다. 확실하게 자기 머릿속에 내가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계획이 있으면 그걸 따라 가게 되는 것 같다. 목적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내가 정말 그걸 하고 있는지 녹음을 해서 들어 보기도 한다.

송: 한국 학생들이 종종 상상력이 부족하고 음색이 빈약하다는 평을 듣는 것에 대해 조언을 한다면?

백: 한국 사람들은 독특하게 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굉장히 많은 것 같다. 자기만의 꿈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일단은 어른들이 모든 상상력을 죽이고 있다. 유태계 부모들은 아이가 남다른 것을 절대 겁내지 않는다. 아인슈타인, 스필버그의 유년 시절 일화들을 잘 알지 않는가. 예를 들어 우리는 아이를 학원을 보내 그림을 그리게 하지만, 유태계 부모는 선생님과 함께 전시회를 가게 한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네다섯 살 먹은 아이들이 전시회를 가는 것이 생활화 되어 있다.

송:  연주에 있어서 각 나라의 특성이 나타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백: 어디다 갖다 버릴 수 없다.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음악언어를 확실하게 이해를 하면 약간 이국적인 액센트가 들어가도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그리고 오히려 그게 특성으로 보여질 수 있다.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를 확실하게 모르고 음악언어라는 것을 이해를 하지 못한 채, 선생만 따라하는 경우에는 소위 ‘한국 사투리’가 나오게 되어 있다.

송: 앞으로 계획을 알려 달라.

백: 첼리스트 로렌스 레서와의 베에토벤 첼로 소나타와 변주곡 전곡 연주로 여러 곳의 콘서트와 레코딩을 앞두고 있다. 다음 달엔 캐나다를, 내년에는 한국에서의 연주와 페스티발, 또 뉴욕 메네스음대에서 주최하는 ‘인터내셔널 키보드 인스티튜트’에 다시 초청되어 가게 된다. 차이코프스키 콩쿨 입상 이후에 바로 한국에 들어가는 바람에 내 연주를 들어 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번 컨퍼런스에서와 같이 지금은 이렇게 나를 알리는 때인 것 같다.

자신의 연주를 불과 몇 시간 앞 둔 시각에도 백혜선씨는 다른 교수의 특강을 듣기 위해 열심히 교실들을 찾아다니느라 여념이 없었다. 음악을 향한 열린 마음과 겸손, 지치지 않고 변화를 꿈꾸는 그의 날개는 오늘도 더 멀리 비상하고 있다.

http://www.thekonet.com/news/articleView.html?idxno=5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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