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yeyoung Song, Pianist

June 14, 2008

[6.16.2007] Clara Schu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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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 슈만의 이야기

 

2007년 06월 16일 (토) 04:00:41 송혜영  www.hyeyoungsong.com

학창시절 나는 친구들과 함께  대학로에 위치한 ‘슈만과 클라라’라는 커피샵을 종종 찾곤 했다. 클래식 음악과 유명연주가들의 영상을 보여주는 그 곳은 쉴 새 없이 질주하던 내 젊음이 잠시나마 느리게 세상을 응시할 수 있었던 소중한 쉼터이자 삶의 활력소였다.

‘슈만과 클라라’라는 이 낭만적 이름의 장소에서 나는 한 위대한 작곡가와 그의 숙명적 사랑이자 음악적 영감의 원천이었던 한 여인을 머리 속에 그려 보며 홀로 깊은 상념에 잠기곤 했다. 하지만 그 당시 내게 클라라는 슈만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반쪽의 이름에 불과했었다. 지금 누군가 내게 클라라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그를 한 여성음악가로서의  내 모습을 역사 속에 비춰볼 수 있게 한 고마운 장본인이라고 답할 것이다.   

Image:Clara Schumann 1853.jpg

클라라 비크

클라라  비크(Clara Wieck,1819-96)는 유명한 음악교사였던 아버지 밑에서 5살 때부터 체계적인 음악교육을 받았다. 9살 때 첫 데뷰무대를 가졌고 같은 해 직접 작곡한 피아노곡을 발표하는 등 그녀의 천재성은 놀라웠다. 그녀의 연주를 접했던 괴테, 멘델스죤, 쇼팽은 ‘신동’이라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버지의 제자이던 젊은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Robert Schumann,1810-1856)과 사랑에 빠졌을 때, 그녀의 아버지는 아름답고 재능넘치는 딸을 가난한 음악지망생에게 허락하지 않았다. 3년 동안의 법적 분쟁을 통해 1840년 결국 결혼에 성공했을 때, 사람들은 그녀를 슈만의 부인이라 부르지 않고, 오히려 슈만을 클라라의 남편으로 불렀다고 한다.

진정한 파트너로서 로베르트와 클라라는 결혼생활을 통해 함께 음악을 연구하고 서로 음악적 영감을 주고 받으며 수 많은 걸작품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클라라의 천재적 재능에도 불구하고 당시 여성이 작곡가로서 인정받는 일은 험난했다. 1839년 그녀의 일기는 여성 작곡가로서의 고뇌를 드러내고 있다.

“나는 한 때 내가 대단한 창작력을 지녔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 생각을 떨쳐 버려야 할 지 모른다. 여성은 작곡과는 그리 잘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무도 그것을 가능하게 한 사람도 없었지 않은가. 내가 그럴 수 있을까? 내 아버지가 나로 하여금 가능하다고 믿게 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조차 너무 건방진 것일까?”

로베르트는 아내에게 작곡을 계속 권하면서 그녀를 지원하려고 했지만, 클라라가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책임을 다하면서 피아노 연주와 작곡까지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녀의 개인적 삶은 결혼을 위한 아버지와의 힘든 싸움, 남편의 정신병 발작과 사별, 그 후 일곱 자녀를 홀로 책임지면서 그 중 넷의 죽음을 그녀의 눈으로 보아야 했던 비극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불운했던 개인사와 사회적 편견의 벽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음악에 대한 열정을 결코 놓지 않았다. 클라라는 대부분의 남편의 작품들을 초연하였고  특별히 브람스와 쇼팽의 뛰어난 해석가로 높이 인정받았다.

당대의 유명한 피아니스트 리스트, 안톤 루빈스타인 등과 어깨를 겨루며 ‘피아노의 여왕’이라는 칭호를 받으며 전유럽을 정복했고, 심각한 류마티즘이 그녀를 멈출 때까지 당대 최대 레퍼터리를 소유한 연주가로서 당당히 활동하였다.

클라라가 평생을 바친 열정적인 연주활동과 음악계에 세운 업적들은 그 당시 사회에서의 여성의 지위를 생각할 때 더욱 위대한 의미를 지닌다. 서거 100주년이던 1996년 무렵 이후 작곡가로서 클라라에 대한 재평가가 더욱 활발히 이루어졌고, 그녀의 작품들은 이제 세계 곳곳의 많은 연주가들에 의해 새 생명을 얻고 있다.

클라라의 목소리

바하, 모짜르트, 베에토벤, 쇼팽…. 왜 서양음악사에 나타난 위대한 음악가들은 대부분이 남성일까라는 의문을 한 번쯤 품어 본 적이 있는 이라면 세상의 절반인 여성과 음악에 대한 관심 또한 기울여 보았을 법하다.

‘파리넬리’라는 영화를 통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카스트라토’의 등장은 1500년대 교황청이 여성의 공연을 금지시킴으로써 작곡가들이 여성의 목소리를 가진 거세한 남성가수를 기용해야 했던 뿌리깊은 남녀차별의 역사에서 기인한다.

클라라 슈만을 비롯해 최초의 여성음악가로 알려진 힐데가르드 폰 빙엔, 난넬 모짜르트, 파니 멘델스죤과 같이 음악사에 기록된 소수의 여성음악가들은 그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오랜 동안 제대로 재능을 평가받지 못했다.

1880년, “여성은 음악을 작곡하기에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스태미너가 부족할 뿐 아니라, 여성의 마음은 음악을 만드는데 과학적 논리를 가지 못한다.”라는 죠지 업튼(George Upton)의  말은 당시의 여성에 대한 시각을 고스란히 대변해 준다. 인간의 고귀한 문화유산이자 본질적으로 가장 자유롭고 아름다와야 할 음악의 영역에서조차 남성 우위의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은 인류의 슬픈 아이러니이다.

얼마 전 한 젊은 한국 여성 지휘자가 독일의 지휘 콩쿨에서 입상하였다는 낭보를 접하고 마음이 기뻤다. 여전히 여성 지휘자의 출현만으로도 화제거리가 되는 이 때,  참으로 기분 좋은 승전보가 아닐 수 없었다.

오늘 우리의 많은 딸들이 음악을 배우고 있다. 불과 100여 년 전 사회적 편견에 굴복하지 않고 당당히 예술혼을 불태운 클라라의 이야기를 이제 그들에게도 들려주어야 하지 않을까. 바라건대 음악을 가르치는 한 선생으로서 나는 그들이 음악을 통해  한 인간으로서의 자신의 참된 모습과 조우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음악 안에서 새처럼 자유롭기를, 자신이 누구인지 말할 수 있고, 느끼고 생각하는 바 대로 표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무대에서 세상을 향해 당당히 울려 퍼지는 딸들의 건강하고 자유로운 목소리를 더 많이 듣게 되기를 소망한다.  

송혜영
www.hyeyoungso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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