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yeyoung Song, Pianist

June 14, 2008

[7.14.2007]Pianist Van Cliburn

Filed under: Column — admin @ 9:33 pm

희망의 이름이 된 피아니스트, 반 클라이번

제 13회 차이코프스키 콩쿨 소식을 듣고

2007년 07월 14일 (토) 14:31:18 송혜영  www.hyeyoungsong.com

얼마 전, 러시아에서는 제 13회 국제 차이코프스키 음악 콩쿠르가 막을 내렸다. 세계 최고권위를 자랑하는 이 콩쿠르에서 한국의 임동혁군의 입상 소식을 전하는 언론들은 대부분의 입상자들이 러시아 자국민이라는 것에 대해 아쉬움과 우려 섞인 시선 또한 숨기지 않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달라스 포트워스 지역은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와는 각별한 인연이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바로 제 1회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하여 미국의 살아있는 전설이 된 피아니스트 반 클라이번과 그의 정신을 사랑하고 후원하는 이들이 숨쉬고 활동하는 고장이기 때문이다.

   
 
  ▲ 반 클라이번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와 반 클라이번

반 클라이번(Van Cliburn, 1934~)은 루이지애나 슈리포트 태생으로 여섯 살 때 텍사스 킬고어로 이주해 왔다. 피아니스트 어머니에게 세 살 때부터 정식 피아노 레슨을 받기 시작한 그는 그 다음 해에 첫 독주회를 열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줄리어드 음악원에서 스승 로지나 레바인과 공부하면서 러시아 낭만주의의 전통을 깊이 배울 수 있었고, 이것은 자연스럽게 그를 1958년 제 1회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 출전하도록 이끈 계기가 되었다. 클라이번이 결선에서 연주한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은 현지 청중들의 열렬한 기립박수를 받았으며, 심사위원들은 따뜻한 낭만과 젊은 패기가 어우러진 그의 뛰어난 연주에 1위의 영예를 허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계 2차대전과 한국전쟁 직후 공산진영인 소련과 자유진영의 미국의 갈등의 골이 깊어만 가던 냉전시대, 스물 세살의 미국 청년이 소련의 콩쿠르에서 우승하였다는 것은 전세계에 많은 것을 시사한 ‘사건’이었다. 1957년 세계 첫 인공위성 스푸트닉호(Sputnik) 발사의 성공으로 한층 고무되어 있던 소련으로서는 이 행사를 통해 자국의 문화적 우수성을 과시하고자 시작부터 단단히 벼르고 있던 차였다.

클라이번의 우승은 당시 열등감과 문제의식에 빠져있던 미국의 문화적 자존심을 크게 높여 주었고, 냉전의 갈등에 메말라 가던 전세계를 향해 음악이 국가간의 사상의 차이나 정치적 구도를 극복할 수 있다는 평화와 희망의 메세지를 던졌다.

또 그가 1958년 콘드라신의 지휘로RCA 빅터 오케스트라와 녹음한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은 열광적인 대중의 인기를 끌며 클래식 음반으로서는 처음으로 밀리언셀러의 반열에 올랐고, 타임지는 “러시아를 정복한 텍슨(The Texan Who Conquered Russia)” 이라는 제목으로 그를 표지에 싣는 등 미국인에게 반 클라이번은 음악가 이상의 것을 상징하는 이름이 되었다.

소통과 평화의 가치를 전하며

낭만 피아노 음악의 뛰어난 해석가로 칭송받으며 활발히 활동하던 중 매너리즘에 염증을 느껴 돌연 연주계를 잠적하기도 했던 그는 현재 포트워스에 거주하며 반클라이번 협회(cliburn.org)의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를 사랑하고 후원하는 이 지역 음악애호가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이 단체는 국제 음악 콩쿠르 개최, 젊은 음악가와 학생들을 위한 교육과 연주활동 지원, 훌륭한 음악가들을 초청하여 공연을 유치하는 일 등에 바삐 움직이고 있다.

그 중에서도 1962년부터 포트워스에서 4년마다 열리고 있는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는 그 명성이 널리 알려진 행사로 성장하였다. 공교롭게도 역사적으로 러시아를 비롯한 많은 동구권 피아니스트들이 이 콩쿠르에서 눈에 띄게 선전하고 있는데, 러시아 본토의 음악이 이 곳에서 연주될 때면 마치 50여년 전 러시아에서 빛나던 클라이번의 영광이 겹쳐지는 듯 텍사스 청중들은 뜨거운 환호성을 감추지 못한다. 이제 반 클라이번은 정치적으로 첨예한 갈등을 빗던 두 국가간의 높은 벽을 허물고 문화적 교류를 가능케 한 이름으로서 사회에 남겨진 몫을 기쁘게 담당하고 있다.

이 지역 음악회장을 찾을 때면 친절한 웃음의 그와 종종 마추치게 될 지 모른다. 그럴 때면 “미스터 클라이번!”하고 반갑게 인사를 건네보는 것도 좋을 일이다. 뜨거운 가슴으로 음악의 힘을 온 세계에 증명하고 역사 속에서 걸어나온 한 음악가와의 만남은 먼 길 달려 음악회를 찾아 온 고단한 발걸음들에게 주어지는 또 하나의 즐거움일 것이다.

 http://www.thekonet.com/news/articleView.html?idxno=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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