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yeyoung Song, Pianist

July 28, 2017

[7.21.2017] 만남의 축복, 스승의 음성을 따라

Filed under: Column — admin @ 10:58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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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송혜영의 음악 에세이 

만남의 축복, 스승의 음성을 따라 

음악인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끝없는 만남과 인연의 축복이다. 스승과의 인연, 제자와의 인연, 동료와의 인연, 청중과의 인연…그 소중함과 신비스러움을 체험하는 여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장 필요할 때 가장 좋은 스승을 만나는 복을 누려온 삶에 감사드릴 때 마다, 늘 나와 함께 하는 그 분들의 음성이 귓전 가득히 울려 퍼진다. 

“대가가 되어라.” 

중학교 시절 교과서에 없는 클래식 명곡들을 즐겨 가르치시던 음악 선생님께서는 어느 날 베르디의 오페라의 한곡을 들려 주셨다. 그 숭고한 울림에 모두의 호흡이 잠잠해 질 때 쯤 나즈막히 중얼거리시던 한 마디.  “이렇게 아름다운 음악을 사람들이 들을 수만 있다면 이 세상에 전쟁과 분쟁은 일어나지 않을텐데…” 시간이 멈춘 것 같던그 순간부터 음악은 내게 돌이킬 수 없는 소명이 되었고 운명이 되었다. 선생님은 늘  “넌 대가다. 대가에게 배워라. 대가가 되어라.”고 하시며 마치 미래를 미리 알고 계신 듯 여중생 제자를 예술가로서 극진히 대우하셨다. 그시절의 꿈을 지금까지 지키며 살아 올 수 있었던 것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믿음으로 지켜 봐 주시는 스승이계셨기 때문이었다.    

“너에게 놀랄만한 좋은 일이 일어날 거야.” 

미국 유학을 떠나기 전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러 찾아 뵙던 날, 시내에는 교통이 마비되는 큰 폭우가 내렸다. 평소점쟎으신 선생님께서 어디서 그런 흥이 나셨던 것일까. 시간도 공간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막막하던 길 위에서 선생님은 오페라의 한 대목이라도 부르듯 목청껏 반복해 외치셨다. “비 한 번 멋있게 오는구나. 잘 될 거다, 잘 될거야. 너에게 놀랄만한 좋은 일들이 일어날거야.” 유학 떠나는 제자에게 천둥보다 번개보다 뜨거운 믿음과 용기를심어주신 스승의 마음. 인생의 세찬 비를 만날 때마다 폭풍을 뚫고 날 일으켜 세우던 그 음성이 함께 울릴 것이다. 

“내 평생 오늘처럼 박수를 많이 쳐 본 적이 없다.” 

나의 미국유학은 운명처럼 이루어졌다.대학원을 졸업을 앞둔 학기, 학교를 방문하신 미국 교수님께 장학생으로발탁되었고, 평소 제자들의 미래에 관한 한 자율적으로 결정하게 두시는 지도교수님께서 나에게만은 유학을 절대적으로 권유하시며 모든 절차를 손수 추진해 주신 것이었다. 그렇게 긴 세월을 미국에서 활동하다 작년 한국의한 대학의 초청독주회로 다시 선생님 앞에 서게 되었을 때, 대수술 후 부축을 받고 찾아오신 선생님은 당신 평생이렇게 박수를 많이 쳐 본적이 없다고 하시며 어린아이처럼 나를 안고  기뻐하셨다. 제자를 직접 넓은 세계로 날려 보내셨던 은사님 앞에 다시 돌아와 당신의 옛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올랐던 그 날 밤, 내게는 좀처럼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넌 분명 훌륭한 엄마가 될 거야.”   

텍사스 주립대 박사 과정 시절, 학생을 가르치는 나의 수업을 평가하시던 교수님께서는 문득 날 불러 세우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말씀을 마치고도 한 동안 내 얼굴을 떠나지 않던 그 눈빛은 말보다 더 큰 확신과 용기를 담고 계셨다. 매 학기 가장 많은 우수 학생을 배출하고 내 클라스 전체를 우수학생으로 선발되게 하는 기록을 남기면서, 이것은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일이라고 아낌 없는 찬사로 나를 지지해 주시던 분이었다. 선생님이 내게심어주신 교육자로서의 신뢰와 확신은 실제로 내 삶에 음악 교육에 대한 한계를 무너뜨렸다. 세 살 아이도, 여든살 노인도, 장애인도, 수감자도 모두 나의 제자이자 스승이었다. 감옥에서 가르치던 한 수감자는 “십 년의 감옥 생활 중 당신의 수업이 내게 한 줄기 신선한 바람이었습니다.” 라는 쪽지를 내게 건네 주기도 했다. 한 사람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일이 인류에 생명을 탄생시키는 일이라는 스승과의 약속이 살아 있는 한 이 길은 계속 될 것이다.  

내 어머니가 즐겨 부르시던 슈베르트의 가곡 ‘보리수’는 전쟁의 상흔이 그대로 남겨진 시골 어린이들을 위해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클래식 가곡을 가르치던 한 선생님이 남기신 것이었다. 나의 은사님은 당신의 어머니께 직접피아노를 배우셨는데, 그 뒤에는 문명을 막 받아들이기 시작한 한국의 소녀에게 레셰티츠키 정통주법으로 피아노를 가르치신 한 선교사님이 계셨다. 시공을 뛰어 넘어 그 분들의 음악과 정신이 오늘 내 손끝에 흐르고 있음을생각할 때 한 없이 겸허해 질 수 밖에 없다.  

이제 선생님과 같은 음악가가 되고 싶다고 눈망울을 반짝거리며 내 앞에 선 학생들 앞에 나는 다시 기억한다. 당신의 존재를 다 나누어 주고도 부디 자기 자신이 되어라 당부하셨던 스승의 음성을, 제자의 무대  뒤에서 나는 아무 공이 없다 고개 저으시던 그 마음을… 

글 송혜영 

July 11, 2017

[6.30.2017] 제 15회 반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쿨의 막을 내리며 “새로운 4년의 기대와 설레임으로”

Filed under: Column — admin @ 11:33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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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5회 반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쿨의 막을 내리며
“새로운 4년의 기대와 설레임으로”

클라이번의 이름
반 클라이번(Van Cliburn, 1934~2013) 은 1958년 소련 자국의 문화적 우수성을 과시하고자 개최한 제 1회 차이코프스키 콩쿨에서 우승한 미국 피아니스트이다. 이념의 갈등이 깊어 가던 냉전시대 스물 세 살 미국 청년의 우승은 당시 문제의식에 빠져있던 미국의 문화적 자존심을 크게 높여 준 사건이었다. 이 후 반클라이번은 음악이 사상의 차이나 정치적 구도를 극복할 수 있다는 평화와 희망을 의미하는 이름이 되었다. 그를 사랑하는 이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반클라이번협회는 1962년부터 포트워스에서 4년마다 반클라이번 국제 콩쿨을 개최하며 재능있는 젊은 피아니스트를 발굴해 후원하고 있다.

클라이번의 한국
클라이번 콩쿨 역사상 한국 피아니스트들의 활약이 이렇게 두드러진 적은 없었다. 총 30명의 참가자 중 5명의 한국연주가가 초청되고 그 중 3명이 준결선에 올라 첫 한국인 우승자가 나오기까지, 이 급격하고도 놀랄만한 쾌거는 결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일은 아닐 것이다. 2005년 양희원 양에 이어 2009년 손열음 양의 준우승은 클라이번 역사에 한국 피아니스트의 기상을 새긴 귀한 수상이었다.
지난 시상식에서 심사위원 특별상 수상자로 김다솔 군의 이름이 불리우던 순간, 좌중은 잠시의 적막과 함께 공감의 웅성거림으로 가득했다. 비록 결선에 오르지 못했지만 이미 김다솔이라는 이름은 그가 남긴 감동을 떠오르게 하는 강력한 주문이 되어 버린듯 했다. 빛나는 재능과 더불어 겸손하고 발전적인 자세를 보여준 김홍기 군의 미래도 굳게 기대하고 있다. 이 곳 언론은 한국의 음악교육을 주목하라, 한국 피아니스트에게 우승이 돌아갔다 등의 들뜬 목소리로 헤드라인을 장식했다.배스홀 높히 게양되어 있던 태극기가 그 어느 때 보다 환한 빛을 비추던 현장이었다.

클라이번의 문
세 번의 독주회와 실내악, 두 번의 협주곡을 치뤄야 하는 긴 마라톤의 관문 중에서도 특히 모짜르트 협주곡과 실내악은 연주자들 간의 적나라한 비교와 경쟁이 불가피하던 무대였다. 독주에서 두각을 나타내었던 연주자가 실내악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하거나, 그 반대의 경우도 있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한편 선우예권 군은 모든 라운드에서 굴곡없이 훌륭한 연주를 들려 주었다. 다양한 음악적 면모를 드러내는 프로그램 구성도 명쾌했고 현악기에 생기를 불어 넣는 실내악 연주는 탁월했다. 재능과 더불어 겸손과 깊은 성찰력을 겸비한 그에게 클라이번이 더 넓은 음악적 세계로의 열린 문이 되어 주리라는 것을 확신한다. 클라이번의 가치와 기대를 빛낼 훌륭한 우승자를 선택해 낸 심사위원들에게도 축하의 박수를 보내며…

클라이번의 유산
마지막 연주를 마친 케네스 브로버그의 뺨을 자랑스럽게 어루만지는 스승은 11 회 클라이번 우승자 스타니슬라프 유데니치이다. 브로버그의 창조적 보이싱, 빛을 섞어 제조한 듯한 음색, 감성과 타성에 잠식되지 않는 꿈틀거리는 창조자적 시선은 20 여년 전 유데니치의 연주와 놀랍도록 닮아 있다.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한 레오나르도 피에르도메니코의 스승이 8회 동메달 입상자 베네데토 루포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을 때, 비로소 그의 특별하고 아름다운 음색의 비밀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음악을 위해 연주하는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다던 젊은 시절의 루포. 비록 메달을 받지 못했지만 오직 음악을 위해서 연주한 제자를 자랑스러워 할 그의 모습이 생생히 겹쳐졌다. 누군가에게서 누군가에게로 전해지는 음악, 세대를 거쳐 전달되는 따뜻함의 유산들이 클라이번이라는 바다로 함께 흘러가고 있다.

프레스룸에서
결선을 앞두고 유럽과 타주에서 모여든 취재진들과 비평가들로 붐비는 클라이번의 프레스룸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그 곳은 한국 젊은이들의 월등한 재능에 비해 우리의 관심과 후원이 부족한 현실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 미안한 마음과 자긍심으로 유일한 한국 관계자로서 끝까지 함께 했고 감격스러운 피날레까지 선물 받았다.
심사위원의 마음을 가졌거나 그렇지 못 했거나, 눈물을 흐르게 하고 심장을 뛰게 한 모든 피아니스트들에게 진심어린 감사와 행운을 보낸다. 그대들에게 과감한 음악적 탐사가 주어지기를, 음악과 삶이 함께 무르익는 시절을 만끽하기를…새로운 4년의 기대와 설레임은 이미 시작되었다.

글 송혜영
피아니스트, 음악박사

 

 

 

June 24, 2017

[제 15회 반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쿨] “젊은 예술가들을 향한 찬가”

Filed under: Column — admin @ 6:16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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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5회 반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쿨
“젊은 예술가들을 향한 찬가”

지난 월요일, 반 클라이번 피아노 콩쿨은 여섯 명의 최종 결선진출자를 발표하였다. 6월 10일까지 무대에 오를 피아니스트들은 한국의 선우예권 군과 홍콩의 레이첼 청, 러시아의 유리 페보린과 게오르기 챠이즈, 미국의 다니엘 슈와 케네스 브로버그이다. 아름다왔던 준결선 무대의 주옥같은 순간들과 대회의 이모저모를 전한다.

김다솔(한국)
슈베르트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 D. 960에서 음표 너머 작곡가의 메세지를 전달하는 내면적 표현력이 탁월한 연주를 들려 주었다. 지상에 발 붙힐 곳 없이 떠도는 슈베르트의 보헤미안적 숨결을 따라 부유하는 동시에, 감각에 의존하지 않는 또렷한 의식의 연주. 작곡가가 흠모하며 뿌리내렸던 클래시시즘과 무르익은 로맨티시즘의 숨막히는 대화, 악장 간의 절묘한 대조. 진정성과 측은지심을 담은 음색으로 청중을 울릴 수 있는 음악가, 밝은 앞날을 기대한다.

유통선(중국)
여린 체구에 등을 구부려 앉은 스물 한 살의 이 피아니스트가 있는 곳은 절대고독의 광야이다. 그 곳은 지상의 묵직한 고통도 천사의 콧노래도 가장 가깝게 듣는 곳이다. 자연스럽고 완벽하게 공명된 음색, 강요받거나 주입되지 않은 표현, 피아니스트적 고정관념에서 탈피한 보이싱…지독한 외로움의 댓가로 그에게 주어진 것은 꾸밈없는 자유. 그의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 연주는 상상력을 불러 일으키는 음색과 표현과 극도의 자연스러움을 유지한 채 모든 음에 색깔을 부여하고 말하게 하는 능력, 창조적인 원근법적 구성력을 지닌 명연이었다.

김홍기(한국)
특유의 음악적 유연함을 지닌 연주가이다. 유려하고 섬세한 모짜르트 협주곡에서 욕심없이 아름다운 표현과 음색이 빛났다. 뛰어난 테크닉과 사려깊은 섬세함으로 광란적 클라이맥스로 몰아가기 쉬운 칼 바인 소나타에서도 주제의 명징성과 아름다운 음색으로 끝까지 본질에 충실한 연주를 들려 주었다. 섬세한 결의 연주자, 그의 음악이 그 결을 따라 아름답게 꽃 피우길 기원한다.

게오르기 챠이즈(러시아)
음의 울림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탁월한 음악가. 모든 연주에서 노래하는 톤과 조화된 화성의 울림이 아름다왔다. 그 중에서도 그의 슈만은 백미. 완숙하고 정제되어 있으며 문학적인 우아함과 생기가 가득찬 연주. 미지의 향수와 동경을 불러 일으키며 잡히지 않을 듯 실체가 보이지 않는 로맨티시즘의 실체를 건져냈다.

선우예권(한국)
과연 진정성과 따뜻함이 살아 있는 감동적인 연주를 펼쳤다. 어떤 곡에서든 작곡가 자신이 되어 버리는 연주가. 그의 연주는 감성과 이성의 완전한 일치점을 지닌 연주가들만이 주는 특별한 안정감을 가지고 있다. 베에토벤 소나타에서는 아름다운 멜로디에 감추어진 작곡가의 치열한 내면적 갈등과 전투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담아 냈다. 음 하나에 담긴 고통과 환희를 읽어내는 연주에 청중들도 마지막 음이 영원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함께 했다. 주옥같은 순간이었다. 어떤 기교적인 부분조차 잘 친다는 생각보다 아름답다는 생각이 먼저 들게 만드는 연주자. 그래서 그의 스트라우스는 황홀했다. 프로코피에프에서는 풍성한 음악적 어휘력이 발휘되었다. 구조에 대한 비율감도 탁월하다.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레오나르도 피에르도메니코(이탈리아)
클라라 하스킬을 연상시키는 영롱함, 단순하고 우아함,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움을 가진 그의 모짜르트 협주곡 연주. 아무리 작은 소리에서도 왼손 화성의 각 라인이 노래하게 하는 그 투명성이 귀를 의심케 할 정도이다. 숙명적인 오케스트라와 피아노의 조화.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재회하는 순간에 열리는 가슴벅찬 세계. 아름다운 프레이징, 풍만한 테이스트가 돋보이는 연주가이다.

예선부터 감동적인 연주를 들려준 김다솔 군이 여섯 명의 최종결선진출자 명단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 많은 음악관계자와 청중들에게 아쉬운 이슈로 떠올랐다. 국가와 기업 차원의 후원과 더불어 음악을 사랑하는 발걸음이 하나 둘 모인다면, 우리의 귀한 재능들이 기회의 문 앞에서 좌절하거나 적어도 정정당당하게 겨룰 수 있는 기회를 빼앗기는 일로부터 이들을 지켜줄 수 있을 것이다.

작곡가 바르톡은 “경쟁(콩쿨)은 경주마를 위한 것이지 예술가를 위한 것이 아니다.” 라는 말을 남겼다.김다솔 군과 김홍기 군은 이제 돌아가 다시 기도하듯 피아노 앞에 앉을 것이다. 선우예권 군은 홀로 무대를 빛내며 훌륭한 연주를 선사하고 있다. 격려와 응원을 받아 마땅한 이 젊은 예술가들의 음악과 앞날을 함께 지켜 봐 주시길.

송혜영
피아니스트, 음악박사
웨더포드 컬리지 Artist in Residence

[제 15회 반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쿨 우승 기념 인터뷰] 진실과 위로를 남긴 피아니스트 선우예권

Filed under: Column — admin @ 6:15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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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5회 반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쿨 우승 기념 인터뷰
진실과 위로를 남긴 피아니스트 선우예권
“평화로이 쉬어라, 모든 영혼이여”

지난 6월 10일, 제 15회 반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쿨에서 선우예권(28) 군이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영예의 금메달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시상식 현장과 전화기 너머 그와 나눈 이야기들.

송혜영(이하 송): 예선부터 모든 연주가 훌륭했지만 타연주자들과 확연히 구별된 실내악 연주에서 우승을 최종장담했다. 그럼에도 1위 호명을 앞둔 순간 만큼은 얼마나 긴장되던지…
선우예권(이하 선우): 음악은 주관적인 것이고 결과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라 나 또한 매 순간 떨면서 임했다. 하지만 연주 자체에만 집중하려고 최대한 마인드 콘트롤을 했던 것 같다. 실내악 연주 때 나도 참 행복했다. 워낙 실내악을 좋아하고 마음이 잘 맞는 사람들과 함께 음악을 만드는 재미와 감동이 더 크다. 연주 후 브랜타노 콰르텟에게서 따로 이메일을 받았다. 너무 좋았다고. 아마 앞으로 함께 더 연주를 하게 될 것 같다.

송: 축하한다! 콩쿨을 위한 연주가 아니고 각 라운드마다 완성된 리사이틀을 대접받는 느낌이었다. 프로그램 구성에 있어 중점을 둔 점이 있다면.
선우: 세 번에 걸친 솔로 리사이틀을 연주자 재량으로 자유롭게 짤 수 있었던 것이 좋았다. 실제 리사이틀 프로그램을 짜듯이 하려고 노력을 했었다. 또 최대한 내가 가지고 있는 음악적 아이디어들과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 드리려고 신경을 썼다.

송: 아름다운 선율 뒤에 숨겨진 작곡가의 내면적 갈등과 전투를 담아낸 베에토벤 소나타 Op.109 는 감동이었다. 이십 대의 나이에 베에토벤 후기 소나타를 완전한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표현해 내는 능력이 놀라왔다. 작곡가와 곡을 배우는 본인만의 방법이 있다면.
선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곡가가 슈베르트인데 아름답고 행복한 선율에서 아픔이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장조의 밝은 멜로디에서 슬픈 감정이 느껴진다. 베에토벤은 분명하고 확실하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악보에 모두 표기해 놓았기 때문에 그의 의도에 충실하려고 악보를 보고 또 보았다. 그 후에는 느끼는 대로 표현하고자 했다. 청력을 거의 잃어가던 후기에 베에토벤은 복합적인 감정을 많이 느꼈을 것이다. 한 가지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감정들…나도 매 번 칠 때 마다 감동을 느끼며 친다. 하지만 개인적 감정에 치우치지 않도록 끝까지 악보에 메달리려고 노력했다.

송: 이번 콩쿨에서 스스로 가장 만족스러웠던 곡과 아쉬움이 남는 곡이 있다면.
선우: 연주에는 항상 아쉬움이 조금씩 있는 것 같다. 연주자의 직업이라는 것이 최상의 연주를 하기 위해서 살아 가고 그 과정을 통해 행복을 느끼는 것이니까. 슈베르트 가곡 ‘위령가’ (Litanei auf des Fest Aller Seelen)를 무척 좋아하는데 짧은 곡이지만 연주할 때에도 특별하게 다가왔다.

송: 그렇쟎아도 그 곡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는 지인들이 많다. 그 곡이 본인에게 각별한 이유와, 진한 감동을 전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선우: 위령가. 가사만 봐도 와 닿는 곡이다. 음악의 위대함 때문인 것 같다. 슈베르트와 같은 작곡가의 위대함이고. 내가 지향하는 것 또한 순수한 음악 그 자체, 이것 저것 양념을 치지 않은 고상함과 투명함을 간직한 그대로의 음악을 전달하는 것이다. 그 곡을 연주하면서 나 또한 많은 위로를 받고 눈물을 흘릴 때도 있다.

송: 궁극적으로 어떤 음악가가 되고 싶은가. 30년 후에 혹은 사후에 어떤 음악가로 기억되고 싶은가.
선우: 감사하게도 늘 좋은 선생님들을 만났다. 선생님들이 그냥 사람같다는 느낌… 음악가로도 훌륭하시지만 음악에 헌신하고자 음악가가 된 것이 아니라 음악이 그냥 삶이 되어 버리신 분들. 그 분들을 뵈면서 음악의 외양에 신경쓰기 보다는 본질로 들어가서 깊이 있는 감동을 들려주는 음악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이 무슨 감정이든 청중들이 가슴 깊숙히 느낄 수 있는 감동을 가지고 돌아갈 수 있는 연주가가 되면 좋겠다. 또 한 번 느꼈던 감동을 오래 간직하게 하는 그런 연주자가 된다면 행복할 것 같다.

송:모짜르트 콘체르토에서 스승이신 시모어 립킨(작년에 작고)의 카덴짜를 연주했다.
선우: 배운 것도 많았고 내겐 친할아버지 같은 느낌의 분이셨다. 생전에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로 모짜르트를 꼽으셨었다. 카덴짜 뿐 아니라 2악장을 연주할 때도 단순한 악장인데도 불구하고 복잡미묘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선생님이 들으셨다면 자랑스럽다 말씀하셨으면 좋겠다.

송: 음악을 포함해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선우: 진실성. 주위의 친구들과 그런 이야기를 자주 한다. 이것저것에 흔들리지 말고 진실성 가지고 끝까지 음악하자고. 게으르거나 소홀해 지지 말고 진실성을 품고 나아가는 게 제일 중요할 것 같다.

송:스스로 평가하는 피아니스트로서의 강점과 약점은?
선우: 강점은 다양한 레파토리와 연주여행의 스케줄을 소화해 낼 수 있다는 것. 약점은 내 연주를 비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약점이라고 생각된다. 특별히 생각나는 약점은 모르겠다. 생각을 안하고 싶어서 그런지…(웃음)

송: 일생을 통해서 꼭 남기고 싶은 레코딩이 있다면
선우: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작곡가는 슈베르트이기 때문에 그의 소나타 후기 작품들을 남겨 보고 싶은데 그것은 아직은 너무 이른 것 같기도 하다.

송: 슈베르트가 그토록 각별한 이유는 무엇인가.
선우:그의 음악은 마음으로 바로 다가오는 것 같다. 살다보면 통곡할 때도 있지만 가슴 찡하게 다가오는 무언가에 눈물이 절로 흐를 때도 있지 않은가. 슈베르트에게 그런 느낌을 받고 바로 그 점이 위로가 되는 것 같다. 마음 속에 잔향이 은은하지만 오래 깊게 나는 것 같아서 특별하다.

송: 국제적으로 조명받고 롤모델이 되는 자리에 올랐다. 꿈을 키울 후배 음악가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선우: 아직도 잘 와 닿지는 않지만 후배 연주자들이 나를 보면서 조금이라도 깊이 있는 마음으로 음악을 대한다면 감사할 일이다. 하지만 나의 말보다는 음악 자체가 이야기를 해주기 때문에 그것을 깊이 있게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다. 클래식 음악이라는 것이 한 번 들어서 이해하기 어려울 경우도 있다. 하지만 들을 수록 그 감정이 마음 속에 다가올 수 있고 더욱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고 전달력 있는 연주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음악 자체만을 진지하게 들으라고 말해 주고 싶다.

그는 이번 주 클라이번협회와 함께 뉴욕을 방문한 후 콩쿨 전 미리 예정되었던 연주를 위해 곧바로 독일로 떠난다. 7월부터 본격적인 미주 투어가 시작되고 10월에는 포트워스에서 우승 기념 독주회를 가질 예정이다. 인생의 가장 화려한 조명을 받는 시간, 그가 남긴 것은 승리의 짜릿함이 아니라 음악의 위대함, 진실과 위로였다.

“평화로이 쉬어라, 모든 영혼이여/두려운 고통 다 겪고/달콤한 꿈도 끝난 영혼들/삶에 지쳐, 태어남이 없이/ 이 세상에서 떠나간 사람들/ 모든 영혼은 평화로이 쉬어라” (슈베르트 ‘위령가’ 중에서)

글 송혜영
피아니스트, 음악박사
웨더포드 칼리지 Artist in Residence

[제 15회 반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로의 초대”

Filed under: Column — admin @ 6:10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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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5일 부터 포트워스 배스홀에서는 제 15회 반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가 열리고 있다. 예선과 준준결선을 거쳐 김다솔, 선우예권, 김홍기 군이 12명이 선발되는 준결선 무대에 진출하였다. 한국인이 세 명이나 준결선에 진출한 것은 콩쿨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일 뿐더러 수준 높은 훌륭한 연주를 들려준 젊은 연주자들을 지켜보자니 기쁨과 대견함이 교차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자랑스러운 한국 연주자들과 더불어 주목받는 연주자들을 소개한다.

연주자 자신의 음악에 대한 경외와 기쁨을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달하는 소통적 연주를 들려 준 김다솔 군은 모든 참가자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지는 위촉작품에서 도발적이고 창의적인 해석으로, 라벨의 ‘밤의 가스파르’에서는 완숙한 테크닉과 색채감으로 청중의 귀를 사로 잡았다. 로맨티시즘과 신비주의, 복잡한 화성과 재즈 스타일의 리듬 등 작곡가의 다면적 정신세계를 드러내는 스크리아빈 소나타 4번에서는 완벽하게 말의 고삐를 지배하는 명수의 노련함이 돋보이는 연주를 했다. 특히 심미적 구성력이 돋보인 쇼팽의 24개의 전주곡에서는 육체적 병약함과 감정적 소용돌이 너머 작곡가의 영혼을 투명하게 건져내었다. 음악적으로 재구성된 24개의 시공간은 바하의 전주곡과 푸가에서와 같이 전우주적이었고, 흡사 영육이 분리 공존하는 베에토벤 후기 소나타에서의 성스러움을 불러 일으켰다. 곡 사이에는 의도적 대조나 연결 보다는 무심한 말줄임표를 던지고 떠났다가, 이내 차가운 현실의 벽 너머 반복적으로 울리는 낮은 음을 따라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곳으로 청중을 인도했다.

진지하고 심오한 예술성을 지니는 동시에 듣는 이를 완전히 설득해 버리는 연주를 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특히 이십 대 초반의 혈기 넘치는 젊은 연주자라면. 23살 미국 피아니스트 케네스 브로버그는 이것을 가능케 하는 명연을 선사했다. 투명하고 생명력을 가진 음색과 매 순간을 반짝이고 전율하게 하는 창조적 모멘텀, 특히 하프시코드 음색을 흉내낸 것이 아닌 청중의 귀에서 스스로 상상해서 듣게 만드는 그의 바하는 신기한 마법과 같았다. 명징한 주제와 흩어졌던 퍼즐들이 모여 장관을 이루게 하는 탁월한 구성력은 모든 스타일의 곡에서 다이나믹과 리듬의 왜곡없이 극적 클라이맥스로 몰아가는 힘을 발휘했다.

실연에 함께 하지 못 해 아쉬웠지만 인터넷 중계를 통해 본 선우예권과 김홍기 군도 심사위원과 청중들에게 각인을 남긴 훌륭한 연주를 들려 주었다. 선우예권 군은 정제된 음악성, 흠잡을 곳 없이 조화로운 비율감, 극적으로 몰아치는 힘, 모든 곡에 있어 사려깊은 따뜻한 표현으로 감동을 선사했다. 김홍기 군은 뛰어난 테크닉과 아름다운 음색, 폭넓은 음악성을 지닌 연주를 들려 주었다. 특히 평소 콩쿠르에서 자주 연주되지 않는 라흐마니노프 소나타 1번을 연주하며 로맨티시즘의 실타래를 지극히 자연스러우면서도 극적으로 풀어내어 무궁무진한 장래성을 인정받았다. 실제로 한 청중은 팔 십 평생에 이 멋진 곡을 처음 들어보게 된다며 연주자에게 감사를 표현하기도 했다.

이번 참가자 중 가장 아름다운 음색의 연주자라고 할 만한 이탈리아의 레오나르도 피에르도메니코, 바하에서 쇼스타코비치에 이르기까지 정통성과 창의성을 겸비한 예술성의 경지를 들려준 중국의 유통 선, 18세의 최연소 참가자이자 심오하고 강렬한 연주를 한 캐나다의 토니 양, 명료하고 시적인 표현력의 홍콩의 레이첼 청 등도 역시 주목해야 할 연주자들이다.

대회 내내 모든 연주를 들었다는 한 노신사는 각 연주자들의 이름 옆에 자신만의 성적을 기록하고 있던 종이 한 장을 내게 내밀었다. 하지만 체조나 다이빙과 같이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음악에 우열을 가린다는 것은 도무지 어렵다며 이내 곤란한 심정을 토로한다. 순수예술을 경쟁 구도에 놓는 모순적 폐해에도 불구하고, 국제무대에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제공받는 기회로서 콩쿨은 젊은 음악도에게 통과의례처럼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콩쿨 결과 자체가 그들의 음악인생에 어떤 의미가 될런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정작 콩쿨은 함께하는 청중들에게 더 큰 선물을 선사하는 축제가 된다. 음악적 진실 앞에 자신을 내던진 이들 앞에서 우리는 어느새 누가 더 잘하느냐가 아니라 더 진실되고 더 아름다운 음악을 향해 귀를 활짝 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휴머니즘의 본향을 향한 여정이 될 이 축제로의 초대장을 피아니스트 반클라이번의 말로 대신한다.

“위대한 클래식 음악에는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관한 무언가가 존재합니다. 인간의 소통에 있어 표현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대신하고 우리에게 심오함을 주고 의식을 고양하며 희망을 줍니다.”

클라이번 콩쿨은 6월 10일까지 계속되며 포트워스 배스홀과 cliburn2017.medici.tv 를 통해 들을 수 있다.

글 송혜영
피아니스트, 음악박사
웨더포드 칼리지 Artist in Residence

November 6, 2009

[11. 6. 2009] Brahms Piano Concerto No.2 by Joaquín Achúcarro

Filed under: Column — admin @ 9:46 pm

[송혜영의 음악의 날개 위에]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호아킨 아추카로의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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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SMU Caruth Auditorium에서 열린 피아니스트 호아킨 아추카로(Joaquín Achúcarro)의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연주회를 마치고 나오며, 시월이 다가기 전에 브람스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음악을, 또 인생을 그토록 깊이 관조해낼 수 있는 연주가에 의한 것이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브람스가 남긴 두 개의 피아노 협주곡 중 오늘 연주된 2번은, 총 연주시간만 40분 이상 소요되며, 다양한 캐릭터를 통해 클라이막스에 도달하기까지 기술적으로나 음악적으로 난해해서 피아니스트들에게 가장 어렵고도 동시에 가장 사랑받는 협주곡 중의 하나이다. 3악장의 구조를 가진 고전 협주곡의 틀을 벗어나 총 4악장 구성으로 되어있으며, 스케르초풍의 악장을 2악장에, 느린 악장을 3악장에 배치한 것도 주목할 만한 특징들이다. 브람스 특유의 처연한 정감과 심각함을 가지는 동시에 명랑하고 가벼운 이탈리아적 표정들이 다채롭게 나타나는 것은 작곡가가 이곡을 쓰는 동안 가진 두 번의 이탈리아 여행의 영향이 반영된 것으로 본다.

스페인 태생의 거장 피아니스트 호아킨 아추카로의 연주가로서의 명성은 음악계에 익히 알려져 있다. 1959년 리버풀 컴퍼티션에서 입상한 후 전세계적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그는 스페인에서는 기사작위를 받고 그를 사랑하고 후원하는 이들에 의해 ‘아추카로재단’이 결성될 정도로 살아있는 문화재로서 존경받는 음악가이다. 또 내년에 발매될 예정인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와의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연주와 그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필름이 이미 많은 기대를 받고 있다.

지난여름 나는 한 뮤직페스티발에서 그의 오랜 제자이자 리즈컴퍼티션 우승자인 피아니스트 알레시오백스와 루실 정을 만나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들은 한 결 같이 아추카로 선생님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표현했다. 지금까지 일생에 가장 잘한 일이 있다면 그를 만난 일이었다고 주저 없이 말할 정도이다. 연주여행에서 돌아와 달라스에잠 시 머무는 기간에도 언제나 학교에 가장 먼저 오고 가장 나중에 떠나는 이가 그이며, 하루 8시간에서 10시간의 연습이 예외인 적이 없다. 그런 선생님을 보며 제자들은 연습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일흔이 넘은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수영과 여러 운동으로 건강을 성실히 관리하는 것도 왕성한 연주활동을 위한 것이듯, 그 삶의 모든 이유는 음악으로 귀결된다.

오늘의 연주에서 아추카로는 독주악기의 화려한 기교를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관현악과 피아노가 완벽하게 융화되기를 원했던 작곡가의 마음을 그대로 전달해주었다. 최근 전설적 피아니스트 알리샤데라로차(Alicia de Larrocha)의 부음을 들었을 때 잠시 그를 떠올렸었다. 두 사람은 같은 스페인 태생으로서 거의 매일 연락할 정도로 무척 가까운 사이였다고 한다. 격정적이다가도 이내 스며드는 선율이 잔잔히 떨렸던 것은 오랜 친구를 잃은 가슴을 달래는 바람이었을까.

앙콜로 들려준 스크리아빈(Scriabin)의 ‘왼손을 위한 녹턴’은 전반부의 힌데미스(Hindemith)에서 있었던 불균형한 오케스트라사운드의 잔영들을 한번에 빨아들여 정화시켜주었다. 열렬히 환호하는 청중들에게 답례를 표한 후 무대 뒤로 종종 사라지는 백발의 뒷모습은, 일생을 음악 외에 아무런 욕심 없이 살아온 ‘예술가’의 것이었다. 교정을 감도는 밤기운 사이,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낙엽이 흩날린다.

http://www.thekonet.com/news/articleView.html?idxno=6640

June 14, 2009

[6.14.09]An Interview with Yeol Eum Son, the Cliburn Silver Medalist

Filed under: Column — admin @ 9:13 pm

정도(正道)를 걷고자 하는 재능에 날개를 달다
[반 클라이번 콩쿨 은메달 입상, 피아니스트 손열음 인터뷰]
2009년 06월 13일 (토) 01:54:01 송혜영  

포트워스 배스 홀에서 열린 제 13회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쿨에서 한국의 손열음 양이 영예의 은메달을 수상했다. 금메달은 중국의 하우첸 장과 일본의 노부유키 츠지에게 돌아갔으며 동메달은 따로 수여되지 않았다. 역사상 유난히 한국 피아니스트들의 실적이 두드러지지 못했던 이 콩쿨에서 한국인으로는 지난 12회 은메달을 수상한 조이스 양 이래 두 번째 수상으로 한국음악계에 큰 경사가 아닐 수 없다. 시상식 이후  제대로 쉴 틈도 없이 더 바빠진 손열음 양을 만났다.

> 송혜영(이하 송): 정말 축하합니다. 이번 반 클라이번 콩쿨에 선 소감과 은메달 수상한 소감을 말해주세요.

손열음(이하 손): 이번에 준비하면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고, 연주 자체에 아쉬움이 없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보다 더 잘 할 순 없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그 전까지는 콩쿨이든 연주든 이렇게까지 해 본 적이 없거든요. 제 일생 최고로 했고, 그 점에 대해서 훌륭했다고 생각하구요.

> 송: 콩쿨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과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어요?

손: 가장 좋았던 순간은 타카쉬 콰르텟과의 연주였고, 일 차와 이 차 사이 하루 만에 스케줄이 갑자기 바빠지는 바람에 조금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 외엔 특별히 어려운 것은 없었구요.

> 송: 정말 대단해요. 특히 파이널에서는 삼 일 연속 연주해야 하는 살인적 일정을 소화해 냈어요. 부모님께서 많이 기뻐하시죠? 김대진 선생님, 아리에 바르디(Arie Vardi) 선생님 반응은 어떠세요?

손:  네, 특히 바르디 선생님은 콩쿨 중에도 거의 매일 전화해 주실 정도로 많이 신경써 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 엄마 아빠도 한국에서 웹중계로 보실 수 있어서 좋아하셨던 것 같아요.

> 송: 여기 도착해서 몇 주 동안의 일상은 어떻게 보냈어요?

손: 계속 놀러다녔어요(웃음). 호스트 패밀리 아주머니랑 파티다니고 많이 돌아다니고 그랬어요. 연습은 밤에 한 두 세 시간 정도? 독일에서는 보통 밤에 건물에서 아홉 시나 열 시까지 밖에 연습을 못하거든요. 그래서 주로 낮에 했었는데, 여기는 그런 시간 제한이 없는게 너무 좋아서 밤에 주로 했어요. 어차피 제가 꾸준히 연습하는 스타일이 아니구요. 막 쉬었다가 또 할 땐 막 하는 스타일이라서….

> 송: 타카쉬 콰르텟과 브람스 퀸텟 연주에서 멋진 호흡을 들려줬어요. 그로 인해 실내악 상도 받았고, 어땠어요?

손: 먼저 사람들이 너무 좋아서 깜짝 놀랬구요. 워낙 이름 있는 콰르텟이라…. 그리고 제가 음반을 통해서 타카쉬 콰르텟을 좋아했었거든요. 그 분들만의 색깔이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브람스 퀸텟을 많이 했었는데, 무대에서 같이 연주하는 어느 순간 이렇게 느꼈어요.  “ 어? 이거 정말 음반에서 듣던 색깔이 나온다” 그러면서 신기해 했어요.

> 송:  또 페이지 터너(Page turner) 없이 연주해서 화제가 됐었어요.

손:  제가 원래 페이지 터너를 싫어해요. 사무적으로 보이쟎아요. 다른 연주자들에게는 페이지 터너가 없는데 피아니스트만 쓰는 게 싫고, 음악이랑 상관 없는 사람이 옆에 있는 느낌이 싫어서요.

> 송: 가끔 두 페이지씩 넘기는 바람에 보는 사람들을 많이 놀래켰어요.

손: 전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사실 악보도 필요 없구요. 사람들이 놀랬다고 많이 그러시던데… 저는 그거 인식도 못 했거든요.(웃음)

> 송:  지휘자 제임스 콘론(James Conlon)과의 연주는 어땠나요?

손: 좋았어요. 그 분이 나오는 다큐멘터리 본 적이 있는데 내용도 좋아서 기대도 많이 했었어요. 실제 연주에서 오케스트라와 안 맞는 부분이 약간 있었지만 다른 친구들 보니까 그나마 제가 제일  잘 맞은 거였더라구요.(웃음) 시상식 마치고 파티에서 먼저 찾아 오셔서 다음에 꼭 같이 연주하자고 하셔서 놀랐고 좋았어요.

> 송: 이번에 열음 양 프로그램들이 아주 인상 깊었어요. 일차부터 파이널까지 바로크부터 현대까지 다양한 양식과 작곡가의 작품들로, 곡들의 조성 관계까지 고려해서 아주 유기적으로 섬세하게 짰는데… 어떤 아이디어들이 있었나요?

손: 일단 음악을 최우선으로 했구요. 내가 칠 수 있는 걸 마구 집어 넣는 게 싫었고, 진짜 음악회 프로그램처럼 하고 싶었어요. 일 차 때는 독일 중심의 친숙한 곡들을 넣었고(하이든, 슈만, 리스트), 18세기 이후 곡들로 짠 이 차 곡들은 치면서 제가 제일 기분 좋을 만한 곡들로, 파이널은 독주회와 두개의 콘체르토가 서로 대비되게 하려고 했어요.

> 송: 특히 바하, 슈베르트, 베에토벤으로만 이루어진 파이널 독주 프로그램은 콩쿨에서 대단한 ‘용기’였어요. 하지만 그 의도가 느껴졌죠. 콘체르토까지 이렇게 연결이 되는구나 하고…. 그럼 모든 프로그램은 기본적으로 본인이 짠 건가요?

손: 네, 독일에 제가 음악적으로 제일 신뢰하는 친한 친구가 있는데 이번에 도움을 많이 줬어요. 물론 선생님께서도 도와 주셨는데, 예를 들면 제가 드비시 프렐류드를 대여섯 곡 정도 치고 싶다고 말씀드리면 3번에서8번까지가  어떠냐고 조언해주시는 식으로요. 어쩔 땐 이건 아니다라고 하셔서 다시 짜기도 하구요.

> 송: 드비시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드비시 해석이 색달랐다고 생각해요. 어떤 영향을 받은 해석인가요? 소리에 대한 테이스트가 상당히 독특했어요.

손: 감사합니다. 제가 사운드 프로듀싱이나 칼라링은 좀 자신이 있는 편이라서…. 드비시는 듣는 입장에서도 워낙에 좋아하지만, 치는 입장에서도 드비시만큼 재미있는 게 없는 거 같아요. 제 선생님께서도 드비시 전곡 녹음을 하셨었고 일가견이 있으셔서 도움도 많이 받았구요. 예전에 독일에서 처음으로 드비시 프렐류드를 연주할 때였는데 연주 일 주일 전에 무작정 빠리로 갔어요. 도저히 프랑스에 대해 아무 것도 안 느껴 본 상태에서 치는게 싫어서요. 빠리에 삼 일 있다가 와서 연주했구요. 앞으로 기회가 되면 불어도 배워 보고 싶어요.

> 송: 멋져요. 스스로 칼라링에 자신이 있다고 했는데요. 제가 이번에 느꼈던 것도 열음양이 자신의 소리를 만들어 내는 연주를 하더라는 거에요. 본인이 생각하는 강점과 약점은 뭐라고 생각해요?

손: 강점은 제가 남들보다 여러 가지를 할 수 있는 거 같구요. 예를 들면 보통 기성 연주자들은 자기의 분야가 있는 경우가 많잖아요. 루푸가 라흐마니노프를 치지 않고 브렌델이 쇼팽을 하지 않는 것 처럼…. 그렇지만 저는 그런 건 없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계속 그런 식으로 하고 싶어요. 약점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너무 세세한 거라서…. 일단 무대와 연습할 때의 간극이 좀 더 없어졌으면 좋겠구요. 제가 디테일에 집착해서 그런지 무대에서 내려오면 스스로 만족하는 경우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너무 적어요.

> 송:독일에서의 음악 공부랑 생활은 어때요?

손: 너무 좋아요. 일단 선생님이 너무 좋으시구요. 이제 미국에 연주여행 다니느라고 공부할 시간이 줄어들까봐 그게 좀 걱정이긴 한데 어떻게든 잘 조절해서 공부를 계속 열심히 할 생각이에요. 처음에 독일로 간 이유가 선생님 때문이었는데, 지금은 독일 자체도 너무 좋아요.

> 송: 아리에 바르디 선생님께 주로 어떤 점을 배우고 있다고 생각해요?

손: 모든 점에서 너무 영향이 크구요. 걸어다니는 사전이라고 불리실 만큼 모르시는 게 없으시구요. 또 선생님이야 말로 영역 제한이 없으셔서 고전부터 현대까지 다 가리지 않고 하시는 분이시고, 그래서 저도 폭이 점점 넓어지는 것 같아요.

송: 이번 콩쿨의 프로그램 같은 것을 계획하고 실행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열음양의 레파토리가 워낙 넓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지요. 광대한 레파토리를 가지고 있는데 만약에 일생에 단 한 번의 전곡 연주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떤 작곡가의 작품으로 하고 싶어요?

손: 모짜르트 콘체르토? 아, 아니에요. 모짜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좋은 바이올리니스트와 그걸 연주하는 게 제 꿈이에요. 모짜르트는 워낙 제 인생이지만, 바이올린 소나타는 정말 완벽한 것 같아요. 피아노 소나타보다 훨씬 좋은 것 같아요. 바이올리니스트가 좋은 사람이 있으면 좋을텐데…. 요즘 찾고 있는데요. 아직 특별히 와 닿는 사람은 없어서 잘 모르겠어요.

송: 꼭 곧 찾길 바랄게요. 자, 이제 콩쿨은 끝났고 인생은 또 계속되겠지요. 열음 양은 삼 십 년 후 어떤 음악가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싶어요? 궁극적으로 어떤 음악가가 되고 싶은게 꿈이에요?

손: 요즘 드는 생각인데, 어차피 음악이란 것은 추상적이고 개인적인 것이고 사람이라면 다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는 거니까, 다수한테 인정받는 걸 목표로 하지는 않구요. 소수의 사람들이더라도 저와 함께 음악 이야기를 할 수 있고 테이스트를 교류할 수 있는, 또 제가 인정하는 테이스트를 가진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게 소수든 다수든 전혀 상관없구요. 그냥 그럴 수 있으면 좋겠어요.

> 송: 이제 미국에도 자주 오게 될 텐데 지금까지 정해진 연주계획 있나요?

손: 자세한 계획은 오늘 오후에 받을텐데요. 어제 포트워스 심포니와 연주로 칠 월 초에 와 줄 수 있냐고 제의를 받았는데 제가 마침 독일에서 연주가 있어서 못오게 되었고, 그 다음 주에 다른 연주로 미국에 오게 될 것 같아요.

> 송: 곧 또 보게 되겠네요. 세상에는 어려서 대단한 재능을 보이는 영재들이 더러 있어요. 열음양도 그들 중 한 명이었구요. 하지만 크면서 재능을 믿고 다른 길로 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이번에 연주들을 보면서 열음 양은 정도를 가려고 하는구나 라고 느꼈어요. 그래서 열음양  미래에 더 많은 기대를 하게 되요. 다시 한 번 축하합니다.

손: 감사합니다.

은메달과 실내악 상을 수상한 손열음 양은 상금 이만 삼천 불과 함께 앞으로 삼 년동안 미주 연주 매니지먼트와 하모니아 문디 미국 레이블로 음반을 내는 부상을 받게 된다. 자신의 타고난 재능에 의지하지 않고, 외롭고 힘들지만 묵묵히 정도를 걷고자 하는 한 젊은 음악인에게 날개가 달렸다. 다수에게 인정받기보다는 스스로에게 진실된 음악을 하고 싶다는 그의 어깨를 껴안으며 한 사람의 음악인으로서 이보다 더 든든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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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thekonet.com/news/articleView.html?idxno=6212

June 7, 2009

[6.5.2009]Hammerklavier Sonata by L.v.Beethoven and Nobuyuki Tsujii

Filed under: Column — admin @ 12:52 am

베에토벤과 노부유키 츠지의 햄머클라비어 소나타
[송혜영의 음악의 날개 위에]
 
 2009년 06월 05일 (금) 07:46:28 송혜영  www.hyeyoungsong.com  
 
    
 지난 주, 반 클라이번 피아노 컴퍼티션은 준결선전을 마치고 최종 결선진출자들을 발표하였다. 여섯 명의 결선 진출자들로는 자랑스런 한국의 손열음 양과 불가리아의 에프게니 보자노프, 일본의 노부유키 츠지, 이탈리아의 마리안젤라 보카텔로, 중국의 디 우와 하우첸 장으로, 6월 3일부터 7일까지 각각 50분가량의 독주회와 포트워스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두 개의 협주곡을 연주하게 된다.

완벽한 프로그래밍과 소리를 창조해 내는 매혹적인 연주를 들려준 손열음 양을 비롯해 최종 결선자들 모두는 빛나는 재능과 뚜렷한 개성을 지닌 장래가 촉망되는 연주자들이다. 이 중에서도 일본의 노부유키 츠지(Nobuyuki Tsujii) 군을 향한 이 곳 청중들의 축하는 더욱 특별할 수밖에 없다.

준결선전의 마지막 날이었던 5월 31일, 음악사에 기념비적 대곡인 베에토벤의 햄머클라비어 소나타(Hammerklavier Sonata)를 완주한 스무 살의 피아니스트 노보유키군은 놀랍게도 선천적 시각장애인이다. 어려서부터 놀라운 음악적 재능을 보인 아들을 위해 부모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접하게 했고 일곱 살이 되었을 즈음 스스로 피아노를 선택해서 집중해 왔다고 한다.

많은 불편이 따르는 점자악보를 사용하지 않고 그는 오로지 리코딩이나 실황연주를 들으며 새 음악을 배운다. 그가 먼저 듣고 선생이 연주해 주면 자신의 해석을 넣어서 따라 연주하는 것이 음악을 배우는 그만의 과정이다. 천재 피아니스트로서 그의 이름은 2005년 폴란드에서 열린 국제 쇼팽콩쿨에서 준결선에 올라 비평가 상을 받으며 국제무대에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예선에서 쇼팽의 열 두개의 연습곡 Op.10 등 이미 믿을 수 없이 훌륭한 연주를 들려주었지만, 많은 음악가들과 청중들은 과연 그가 어떻게 준결선에서 다른 연주자들과 호흡을 맞추어야 하는 실내악과 베에토벤의 햄머클라비어 소나타를 소화해 낼 것인가에 대해 의심과 걱정의 시선을 거두지 못했었다. 그 스스로 선택한 햄머클라비어 소나타는 베에토벤 소나타 중 가장 길고 기술적으로도 어렵기로 알려진 곡일 뿐 아니라 전혀 들을 수 없었던 시기에 쓰인 베에토벤의 심오한 예술혼을 스무 살의 어린 피아니스트가 어떻게 담아 낼 것인가에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모든 우려를 뒤로 한 채, 노보유키 군은 보지 못하는 대신 다른 연주자들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슈만의 피아노 오중주를 훌륭한 앙상블로 연주해 내었으며, 마치 베에토벤을 눈앞에 보는 것 같은 기적적인 햄머클라비어를 선사했다. 들을 수 없었던 작곡가와 보지 못하는 연주자에 의해 완성된 대작과 위대한 인간승리 앞에 많은 청중들은 감동과 경외의 눈물을 흘리며 끊임없는 기립박수를 보냈다. 반 클라이번은 노부유키 군에 대해 “그는 진정한 기적이다. 그의 연주는 치유하는 힘이 있다. 진정 성스러운 일이다.”고 말하며 경탄하였다.

눈을 감은 채 그의 연주를 들을 때마다 울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고요한 세계 저 너머 들려오는 그의 선율은 어린아이와 같이 부드럽고 따사롭게 내 영혼을 어루만진다. 평생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을 선사해 준 반클라이번 콩쿨에게 미리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결선진출자 모두에게 축하와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http://www.thekonet.com/news/articleView.html?idxno=6183

June 3, 2009

[5. 30. 2009]Cliburn Competition 2009 Preliminary Rounds

Filed under: Column — admin @ 8:56 am

2009 반 클라이번 콩쿨 예선전을 다녀와서
[음악의 날개 위에]
 
 2009년 05월 30일 (토) 03:23:56 송혜영  피아니스트 
  
포트워스 배스 홀에서 지난 주부터 열린 제 14회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쿨은 26일 1차 예선을 마치고 열 두명의 준결선자를 발표하였다. 이 중에는 한국의 김규연 양과 손열음 양이 포함되어 있다. 두 연주자는 28일부터 31일 까지 열릴 준결선에서 한 시간 가량의 독주회와 타카쉬 콰르텟(Takacs Quartet)의 실내악 연주 준비에 여념이 없다.
1962년 시작된 이래 랄프 보타펙, 세실 우세, 라두 루푸, 크리스티나 오르티즈, 알렉산더 토라제 등 많은 훌륭한 피아니스트들을 발굴해 낸 반 클라이번 콩쿨은 미국이 자랑하는 최대규모의 피아노 콩쿨이다. 올 해 반 클라이번 콩쿨에 초청된 서른 명의 연주자 중 네 명의 한국 연주자들은 예선에서 각자의 혼신을 다한 좋은 연주를 들려 주었다.

공교롭게도 예선 마지막 날 나란히 연주했던 김규연과 손열음의 예선 프로그램은 많은 유사점이 있었음에도 두 연주자는 각자의 뚜렷한 색채로 풀어 나갔다. 김규연은 하이든 소나타와 슈만의 클라이슬레리아나(Kreisleriana), 그리고 바르톡의 세 개의 연습곡 Op.18을 연주했다. 그의 깊은 감정표현과 자연스러운 타이밍은 나이를 가늠치 못하게 하는 음악적 우아함과 정직함의 결정체였다. 또 고난도의 테크닉을 요하는 바르톡에서는 대가적 피아니스트로서의 그의 무한한 가능성을 충분히 펼쳐 보여 주었다.

동일한 하이든 소나타와, 슈만의 환상소곡집(Fantasiestucke) Op. 12,리스트의 스패니쉬 랩소디를 연주한 손열음은 양식적, 구조적으로 통찰력있는 성숙한 연주를 들려 주었다. 삼 년 전 부터 독일에서 공부하고 있는 그의 연주는, 전반적으로 ‘생략’이 과감해 지고 예전에 비해 훨씬 큰 그림을 그려 나가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음악 앞에 타고난 재능과 열정까지 겸허히 내려놓는 고독한 투쟁을 무수히 거쳤으리라,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1781년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였던 모짜르트와 클레멘티와의 연주 대결로 잠시 거슬러 올라 가 보자. 주최자인 오스트리아 황제는 결국 모짜르트의 손을 들어 주었고, 그 후 클레멘티는 음악 외에 다른 일들을 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크게 상심했다고 한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모짜르트는 클레멘티로부터 배운 것이 없었지만 적어도 클레멘티는 모짜르트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을 것이라는 것이다.

사실 음악과 경쟁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고 남으로 부터 배우기 위해 두려움 없이 도전하는 영혼만큼 아름다운 것이 또 있을까. 각 국의 재능있는 젊은 피아니스트들이 베푸는 음악축제는 오는 6월 7일까지 계속된다.

http://thekonet.com/news/articleView.html?idxno=6165

 

September 13, 2008

[9.13.2008]십 년의 선물

Filed under: Column — admin @ 8:24 am

십 년의 선물
[음악의 날개 위에]
2008년 09월 13일 (토) 01:46:20 송혜영  www.hyeyoungsong.com

비행기 창문 너머 점점 작아지는 세상을 내려다 보며 나는 이런저런 상념에 젖어 든다. 늦은 여름휴가를 위해 떠나는 오늘은 공교롭게도 내가 미국유학길에 올라 DFW공항에 내린 지 정확히 십 년이 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는 지난 시간들이 구름 위로 펼쳐지는 동안, 내 기억은 자꾸만 어느 한 곳을 향해서 더 빨리 날아가고 있다.

텍사스 게이츠빌, 여러 교도소 빌딩들이 마을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작은 도시, 그 곳은 아주 특별한 나의 제자들이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학위를 마쳐갈 즈음 가진 한 컬리지와의 인터뷰에서 학교 측은 대뜸 전혀 상상해 보지도 못 한 제안을 해 왔다. 교도소에서 재소자들에게 대학학점을 인정해주는 음악 강의를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치 거역할 수 없는 왕의 명령이 떨어진 것 같던 그 순간은, 내가 곧장 학기를 시작할 때까지 어떠한 망설임이나 두려움이 끼어드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교도소 정문에서 교실이 있는 건물까지 수많은 철문과 정원에 흐드러진 키 작은 꽃들이 생경하게만 느껴지던 첫 수업 날, 지나가던 죄수복 차림의 한 여자가 나를 발견하고 멀리서 환한 인사를 건넨다. 사람이 사는 곳에서 나는 온기가 새삼 고맙다. 교실에 먼저 도착하여 짧은 기도를 올린 다음 오래된 수도원 같은 그 곳을 찬찬히 둘러 본다.

얼마 후 하나 둘씩 줄을 지어 교실로 들어서는 내 학생들은 모두 하얀 옷에 하얀 운동화, 같은 모양의 안경을 쓰고 있다. 자리에 앉은 그 눈망울들이 처음 보는 내게 알 수 없는 신호를 보낸다. 출석부를 펴고 그들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죄수복을 벗은 영혼들이 비로소 제각각의 목소리를 내며 내게 응답해 온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첫 만남이 지금도 생생하다.

교도소라는 환경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일은 많은 제약이 따르는 것이 사실이다. 학생의 이름은 반드시 성으로만 불리도록 되어 있으며, 적절한 거리감 유지를 위해 사제 간의 자연스러운 친밀감의 표현조차 철저히 금지되어 있다. 또 아무리 작은 물건이라도 개인이 소지할 수 없는 규정에 따라, 수업에 참여하기 위해서 모든 학생은 책과 연필, 종이를 배분받고 다시 반납해야 하는 엄격한 검사대 앞에 서야만 했다.

하지만 그들의 열정과 의지는 오래된 에어컨의 소음 때문에 귀를 쫑긋 세우고 연신 부채질을 해야 했던 열악한 환경 속에서 더 강해지는 것 같았다. 일생에 단 한 번도 악기나 음악에 대해 배워 본 적이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학생들의 높은 학구열과 학습 성취도는 매번 나를 놀라게 했다. 자발적으로 스터디그룹을 짜서 방대한 양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카드로 정리하여 공부하던 그들을 바라보며 내가 느꼈던 뿌듯함을 무엇에 비견할 수 있겠는가.

음악의 원리를 배우며 인생을 이야기 하고 음악가의 삶을 통해 생의 가치를 확인하면서 그들은 시인이 되고 철학자도 되었다. 손뼉을 치며 다 같이 입 맞추어 노래하던 그 얼굴들에는 언제나 생의 기쁨이 넘쳐흘렀다. 출석을 확인하기 위해 간간히 수업을 방해하던 교도관이라도 없었다면, 그들도 나도 이 곳이 교도소라는 것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을 것이다.

가끔 그들이 견디어 온 삶의 고통과 무게를 그저 묵묵히 바라보기만 해야 한다는 것은 내게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끔찍한 자해의 흔적들이 뒤덮고 있는 여윈 팔을 모르는 척 지나치며, 세 살 때 헤어진 딸이 엄마의 전철을 밟지 않기만을 바라고 살아 왔는데 스무 살의 미혼모가 되어 자신을 면회 왔었다고 울먹이던 회한의 눈을 바라보며, 그들의 ‘어메이징 그레이스’가 점점 가늘게 잦아 들어가는 것을 느끼며, 나 혼자 뒤돌아서서 뜨거워진 눈시울을 숨겨야만 했던 적도 많았다. 아니다. 어쩌면 그들에게 할 수 있는 일이 음악 외에 아무 것도 없다는 무력감이, 내게 가르치는 일에 그토록 열심을 내도록 했는지도 모르겠다.

소박한 전자 키보드가 연주하는 멜로디에 금세 눈물을 글썽거리던, 이십 일 세기를 대표하는 음악가는 송선생님이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우며 환호하던 어린 아이와 같은 얼굴들…, 십 년을 넘긴 긴 수감생활 중에 이 수업이 자신에게는 한 줄기의 신선한 공기였다고 감사를 전하며 사라지던 온화한 백발의 뒷 모습과, 기말고사 시험지 한 모퉁이를 연애편지를 쓰듯 정성들여 축복과 감사의 메시지로 채워 전해주던 그 따뜻한 손…. 진정 그대들은 내 꿈이자 기도이며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었다.

높은 곳에 올라 보니 그들이 있는 곳이 더 가깝게 느껴진다. 어떻게 그들과 내가 텍사스 시골의 한 교도소에서 만나게 되었는지 십 년 전 나를 미국에 데려다 놓은 하늘은 알고 있었을까. 그 하늘은 오늘도 말없이 저 낮고 낮은 세상을 끌어안고만 있다.

http://www.thekonet.com/news/articleView.html?idxno=5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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