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yeyoung Song, Pianist

July 28, 2017

[7.21.2017] 만남의 축복, 스승의 음성을 따라

Filed under: Column — admin @ 10:58 am

B037

피아니스트 송혜영의 음악 에세이 

만남의 축복, 스승의 음성을 따라 

음악인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끝없는 만남과 인연의 축복이다. 스승과의 인연, 제자와의 인연, 동료와의 인연, 청중과의 인연…그 소중함과 신비스러움을 체험하는 여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장 필요할 때 가장 좋은 스승을 만나는 복을 누려온 삶에 감사드릴 때 마다, 늘 나와 함께 하는 그 분들의 음성이 귓전 가득히 울려 퍼진다. 

“대가가 되어라.” 

중학교 시절 교과서에 없는 클래식 명곡들을 즐겨 가르치시던 음악 선생님께서는 어느 날 베르디의 오페라의 한곡을 들려 주셨다. 그 숭고한 울림에 모두의 호흡이 잠잠해 질 때 쯤 나즈막히 중얼거리시던 한 마디.  “이렇게 아름다운 음악을 사람들이 들을 수만 있다면 이 세상에 전쟁과 분쟁은 일어나지 않을텐데…” 시간이 멈춘 것 같던그 순간부터 음악은 내게 돌이킬 수 없는 소명이 되었고 운명이 되었다. 선생님은 늘  “넌 대가다. 대가에게 배워라. 대가가 되어라.”고 하시며 마치 미래를 미리 알고 계신 듯 여중생 제자를 예술가로서 극진히 대우하셨다. 그시절의 꿈을 지금까지 지키며 살아 올 수 있었던 것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믿음으로 지켜 봐 주시는 스승이계셨기 때문이었다.    

“너에게 놀랄만한 좋은 일이 일어날 거야.” 

미국 유학을 떠나기 전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러 찾아 뵙던 날, 시내에는 교통이 마비되는 큰 폭우가 내렸다. 평소점쟎으신 선생님께서 어디서 그런 흥이 나셨던 것일까. 시간도 공간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막막하던 길 위에서 선생님은 오페라의 한 대목이라도 부르듯 목청껏 반복해 외치셨다. “비 한 번 멋있게 오는구나. 잘 될 거다, 잘 될거야. 너에게 놀랄만한 좋은 일들이 일어날거야.” 유학 떠나는 제자에게 천둥보다 번개보다 뜨거운 믿음과 용기를심어주신 스승의 마음. 인생의 세찬 비를 만날 때마다 폭풍을 뚫고 날 일으켜 세우던 그 음성이 함께 울릴 것이다. 

“내 평생 오늘처럼 박수를 많이 쳐 본 적이 없다.” 

나의 미국유학은 운명처럼 이루어졌다.대학원을 졸업을 앞둔 학기, 학교를 방문하신 미국 교수님께 장학생으로발탁되었고, 평소 제자들의 미래에 관한 한 자율적으로 결정하게 두시는 지도교수님께서 나에게만은 유학을 절대적으로 권유하시며 모든 절차를 손수 추진해 주신 것이었다. 그렇게 긴 세월을 미국에서 활동하다 작년 한국의한 대학의 초청독주회로 다시 선생님 앞에 서게 되었을 때, 대수술 후 부축을 받고 찾아오신 선생님은 당신 평생이렇게 박수를 많이 쳐 본적이 없다고 하시며 어린아이처럼 나를 안고  기뻐하셨다. 제자를 직접 넓은 세계로 날려 보내셨던 은사님 앞에 다시 돌아와 당신의 옛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올랐던 그 날 밤, 내게는 좀처럼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넌 분명 훌륭한 엄마가 될 거야.”   

텍사스 주립대 박사 과정 시절, 학생을 가르치는 나의 수업을 평가하시던 교수님께서는 문득 날 불러 세우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말씀을 마치고도 한 동안 내 얼굴을 떠나지 않던 그 눈빛은 말보다 더 큰 확신과 용기를 담고 계셨다. 매 학기 가장 많은 우수 학생을 배출하고 내 클라스 전체를 우수학생으로 선발되게 하는 기록을 남기면서, 이것은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일이라고 아낌 없는 찬사로 나를 지지해 주시던 분이었다. 선생님이 내게심어주신 교육자로서의 신뢰와 확신은 실제로 내 삶에 음악 교육에 대한 한계를 무너뜨렸다. 세 살 아이도, 여든살 노인도, 장애인도, 수감자도 모두 나의 제자이자 스승이었다. 감옥에서 가르치던 한 수감자는 “십 년의 감옥 생활 중 당신의 수업이 내게 한 줄기 신선한 바람이었습니다.” 라는 쪽지를 내게 건네 주기도 했다. 한 사람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일이 인류에 생명을 탄생시키는 일이라는 스승과의 약속이 살아 있는 한 이 길은 계속 될 것이다.  

내 어머니가 즐겨 부르시던 슈베르트의 가곡 ‘보리수’는 전쟁의 상흔이 그대로 남겨진 시골 어린이들을 위해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클래식 가곡을 가르치던 한 선생님이 남기신 것이었다. 나의 은사님은 당신의 어머니께 직접피아노를 배우셨는데, 그 뒤에는 문명을 막 받아들이기 시작한 한국의 소녀에게 레셰티츠키 정통주법으로 피아노를 가르치신 한 선교사님이 계셨다. 시공을 뛰어 넘어 그 분들의 음악과 정신이 오늘 내 손끝에 흐르고 있음을생각할 때 한 없이 겸허해 질 수 밖에 없다.  

이제 선생님과 같은 음악가가 되고 싶다고 눈망울을 반짝거리며 내 앞에 선 학생들 앞에 나는 다시 기억한다. 당신의 존재를 다 나누어 주고도 부디 자기 자신이 되어라 당부하셨던 스승의 음성을, 제자의 무대  뒤에서 나는 아무 공이 없다 고개 저으시던 그 마음을… 

글 송혜영 

July 11, 2017

[6.30.2017] 제 15회 반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쿨의 막을 내리며 “새로운 4년의 기대와 설레임으로”

Filed under: Column — admin @ 11:33 am

 

B041

제 15회 반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쿨의 막을 내리며
“새로운 4년의 기대와 설레임으로”

클라이번의 이름
반 클라이번(Van Cliburn, 1934~2013) 은 1958년 소련 자국의 문화적 우수성을 과시하고자 개최한 제 1회 차이코프스키 콩쿨에서 우승한 미국 피아니스트이다. 이념의 갈등이 깊어 가던 냉전시대 스물 세 살 미국 청년의 우승은 당시 문제의식에 빠져있던 미국의 문화적 자존심을 크게 높여 준 사건이었다. 이 후 반클라이번은 음악이 사상의 차이나 정치적 구도를 극복할 수 있다는 평화와 희망을 의미하는 이름이 되었다. 그를 사랑하는 이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반클라이번협회는 1962년부터 포트워스에서 4년마다 반클라이번 국제 콩쿨을 개최하며 재능있는 젊은 피아니스트를 발굴해 후원하고 있다.

클라이번의 한국
클라이번 콩쿨 역사상 한국 피아니스트들의 활약이 이렇게 두드러진 적은 없었다. 총 30명의 참가자 중 5명의 한국연주가가 초청되고 그 중 3명이 준결선에 올라 첫 한국인 우승자가 나오기까지, 이 급격하고도 놀랄만한 쾌거는 결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일은 아닐 것이다. 2005년 양희원 양에 이어 2009년 손열음 양의 준우승은 클라이번 역사에 한국 피아니스트의 기상을 새긴 귀한 수상이었다.
지난 시상식에서 심사위원 특별상 수상자로 김다솔 군의 이름이 불리우던 순간, 좌중은 잠시의 적막과 함께 공감의 웅성거림으로 가득했다. 비록 결선에 오르지 못했지만 이미 김다솔이라는 이름은 그가 남긴 감동을 떠오르게 하는 강력한 주문이 되어 버린듯 했다. 빛나는 재능과 더불어 겸손하고 발전적인 자세를 보여준 김홍기 군의 미래도 굳게 기대하고 있다. 이 곳 언론은 한국의 음악교육을 주목하라, 한국 피아니스트에게 우승이 돌아갔다 등의 들뜬 목소리로 헤드라인을 장식했다.배스홀 높히 게양되어 있던 태극기가 그 어느 때 보다 환한 빛을 비추던 현장이었다.

클라이번의 문
세 번의 독주회와 실내악, 두 번의 협주곡을 치뤄야 하는 긴 마라톤의 관문 중에서도 특히 모짜르트 협주곡과 실내악은 연주자들 간의 적나라한 비교와 경쟁이 불가피하던 무대였다. 독주에서 두각을 나타내었던 연주자가 실내악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하거나, 그 반대의 경우도 있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한편 선우예권 군은 모든 라운드에서 굴곡없이 훌륭한 연주를 들려 주었다. 다양한 음악적 면모를 드러내는 프로그램 구성도 명쾌했고 현악기에 생기를 불어 넣는 실내악 연주는 탁월했다. 재능과 더불어 겸손과 깊은 성찰력을 겸비한 그에게 클라이번이 더 넓은 음악적 세계로의 열린 문이 되어 주리라는 것을 확신한다. 클라이번의 가치와 기대를 빛낼 훌륭한 우승자를 선택해 낸 심사위원들에게도 축하의 박수를 보내며…

클라이번의 유산
마지막 연주를 마친 케네스 브로버그의 뺨을 자랑스럽게 어루만지는 스승은 11 회 클라이번 우승자 스타니슬라프 유데니치이다. 브로버그의 창조적 보이싱, 빛을 섞어 제조한 듯한 음색, 감성과 타성에 잠식되지 않는 꿈틀거리는 창조자적 시선은 20 여년 전 유데니치의 연주와 놀랍도록 닮아 있다.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한 레오나르도 피에르도메니코의 스승이 8회 동메달 입상자 베네데토 루포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을 때, 비로소 그의 특별하고 아름다운 음색의 비밀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음악을 위해 연주하는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다던 젊은 시절의 루포. 비록 메달을 받지 못했지만 오직 음악을 위해서 연주한 제자를 자랑스러워 할 그의 모습이 생생히 겹쳐졌다. 누군가에게서 누군가에게로 전해지는 음악, 세대를 거쳐 전달되는 따뜻함의 유산들이 클라이번이라는 바다로 함께 흘러가고 있다.

프레스룸에서
결선을 앞두고 유럽과 타주에서 모여든 취재진들과 비평가들로 붐비는 클라이번의 프레스룸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그 곳은 한국 젊은이들의 월등한 재능에 비해 우리의 관심과 후원이 부족한 현실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 미안한 마음과 자긍심으로 유일한 한국 관계자로서 끝까지 함께 했고 감격스러운 피날레까지 선물 받았다.
심사위원의 마음을 가졌거나 그렇지 못 했거나, 눈물을 흐르게 하고 심장을 뛰게 한 모든 피아니스트들에게 진심어린 감사와 행운을 보낸다. 그대들에게 과감한 음악적 탐사가 주어지기를, 음악과 삶이 함께 무르익는 시절을 만끽하기를…새로운 4년의 기대와 설레임은 이미 시작되었다.

글 송혜영
피아니스트, 음악박사

 

 

 

Powered by Word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