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5회 반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쿨 우승 기념 인터뷰
진실과 위로를 남긴 피아니스트 선우예권
“평화로이 쉬어라, 모든 영혼이여”
지난 6월 10일, 제 15회 반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쿨에서 선우예권(28) 군이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영예의 금메달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시상식 현장과 전화기 너머 그와 나눈 이야기들.
송혜영(이하 송): 예선부터 모든 연주가 훌륭했지만 타연주자들과 확연히 구별된 실내악 연주에서 우승을 최종장담했다. 그럼에도 1위 호명을 앞둔 순간 만큼은 얼마나 긴장되던지…
선우예권(이하 선우): 음악은 주관적인 것이고 결과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라 나 또한 매 순간 떨면서 임했다. 하지만 연주 자체에만 집중하려고 최대한 마인드 콘트롤을 했던 것 같다. 실내악 연주 때 나도 참 행복했다. 워낙 실내악을 좋아하고 마음이 잘 맞는 사람들과 함께 음악을 만드는 재미와 감동이 더 크다. 연주 후 브랜타노 콰르텟에게서 따로 이메일을 받았다. 너무 좋았다고. 아마 앞으로 함께 더 연주를 하게 될 것 같다.
송: 축하한다! 콩쿨을 위한 연주가 아니고 각 라운드마다 완성된 리사이틀을 대접받는 느낌이었다. 프로그램 구성에 있어 중점을 둔 점이 있다면.
선우: 세 번에 걸친 솔로 리사이틀을 연주자 재량으로 자유롭게 짤 수 있었던 것이 좋았다. 실제 리사이틀 프로그램을 짜듯이 하려고 노력을 했었다. 또 최대한 내가 가지고 있는 음악적 아이디어들과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 드리려고 신경을 썼다.
송: 아름다운 선율 뒤에 숨겨진 작곡가의 내면적 갈등과 전투를 담아낸 베에토벤 소나타 Op.109 는 감동이었다. 이십 대의 나이에 베에토벤 후기 소나타를 완전한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표현해 내는 능력이 놀라왔다. 작곡가와 곡을 배우는 본인만의 방법이 있다면.
선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곡가가 슈베르트인데 아름답고 행복한 선율에서 아픔이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장조의 밝은 멜로디에서 슬픈 감정이 느껴진다. 베에토벤은 분명하고 확실하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악보에 모두 표기해 놓았기 때문에 그의 의도에 충실하려고 악보를 보고 또 보았다. 그 후에는 느끼는 대로 표현하고자 했다. 청력을 거의 잃어가던 후기에 베에토벤은 복합적인 감정을 많이 느꼈을 것이다. 한 가지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감정들…나도 매 번 칠 때 마다 감동을 느끼며 친다. 하지만 개인적 감정에 치우치지 않도록 끝까지 악보에 메달리려고 노력했다.
송: 이번 콩쿨에서 스스로 가장 만족스러웠던 곡과 아쉬움이 남는 곡이 있다면.
선우: 연주에는 항상 아쉬움이 조금씩 있는 것 같다. 연주자의 직업이라는 것이 최상의 연주를 하기 위해서 살아 가고 그 과정을 통해 행복을 느끼는 것이니까. 슈베르트 가곡 ‘위령가’ (Litanei auf des Fest Aller Seelen)를 무척 좋아하는데 짧은 곡이지만 연주할 때에도 특별하게 다가왔다.
송: 그렇쟎아도 그 곡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는 지인들이 많다. 그 곡이 본인에게 각별한 이유와, 진한 감동을 전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선우: 위령가. 가사만 봐도 와 닿는 곡이다. 음악의 위대함 때문인 것 같다. 슈베르트와 같은 작곡가의 위대함이고. 내가 지향하는 것 또한 순수한 음악 그 자체, 이것 저것 양념을 치지 않은 고상함과 투명함을 간직한 그대로의 음악을 전달하는 것이다. 그 곡을 연주하면서 나 또한 많은 위로를 받고 눈물을 흘릴 때도 있다.
송: 궁극적으로 어떤 음악가가 되고 싶은가. 30년 후에 혹은 사후에 어떤 음악가로 기억되고 싶은가.
선우: 감사하게도 늘 좋은 선생님들을 만났다. 선생님들이 그냥 사람같다는 느낌… 음악가로도 훌륭하시지만 음악에 헌신하고자 음악가가 된 것이 아니라 음악이 그냥 삶이 되어 버리신 분들. 그 분들을 뵈면서 음악의 외양에 신경쓰기 보다는 본질로 들어가서 깊이 있는 감동을 들려주는 음악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이 무슨 감정이든 청중들이 가슴 깊숙히 느낄 수 있는 감동을 가지고 돌아갈 수 있는 연주가가 되면 좋겠다. 또 한 번 느꼈던 감동을 오래 간직하게 하는 그런 연주자가 된다면 행복할 것 같다.
송:모짜르트 콘체르토에서 스승이신 시모어 립킨(작년에 작고)의 카덴짜를 연주했다.
선우: 배운 것도 많았고 내겐 친할아버지 같은 느낌의 분이셨다. 생전에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로 모짜르트를 꼽으셨었다. 카덴짜 뿐 아니라 2악장을 연주할 때도 단순한 악장인데도 불구하고 복잡미묘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선생님이 들으셨다면 자랑스럽다 말씀하셨으면 좋겠다.
송: 음악을 포함해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선우: 진실성. 주위의 친구들과 그런 이야기를 자주 한다. 이것저것에 흔들리지 말고 진실성 가지고 끝까지 음악하자고. 게으르거나 소홀해 지지 말고 진실성을 품고 나아가는 게 제일 중요할 것 같다.
송:스스로 평가하는 피아니스트로서의 강점과 약점은?
선우: 강점은 다양한 레파토리와 연주여행의 스케줄을 소화해 낼 수 있다는 것. 약점은 내 연주를 비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약점이라고 생각된다. 특별히 생각나는 약점은 모르겠다. 생각을 안하고 싶어서 그런지…(웃음)
송: 일생을 통해서 꼭 남기고 싶은 레코딩이 있다면
선우: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작곡가는 슈베르트이기 때문에 그의 소나타 후기 작품들을 남겨 보고 싶은데 그것은 아직은 너무 이른 것 같기도 하다.
송: 슈베르트가 그토록 각별한 이유는 무엇인가.
선우:그의 음악은 마음으로 바로 다가오는 것 같다. 살다보면 통곡할 때도 있지만 가슴 찡하게 다가오는 무언가에 눈물이 절로 흐를 때도 있지 않은가. 슈베르트에게 그런 느낌을 받고 바로 그 점이 위로가 되는 것 같다. 마음 속에 잔향이 은은하지만 오래 깊게 나는 것 같아서 특별하다.
송: 국제적으로 조명받고 롤모델이 되는 자리에 올랐다. 꿈을 키울 후배 음악가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선우: 아직도 잘 와 닿지는 않지만 후배 연주자들이 나를 보면서 조금이라도 깊이 있는 마음으로 음악을 대한다면 감사할 일이다. 하지만 나의 말보다는 음악 자체가 이야기를 해주기 때문에 그것을 깊이 있게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다. 클래식 음악이라는 것이 한 번 들어서 이해하기 어려울 경우도 있다. 하지만 들을 수록 그 감정이 마음 속에 다가올 수 있고 더욱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고 전달력 있는 연주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음악 자체만을 진지하게 들으라고 말해 주고 싶다.
그는 이번 주 클라이번협회와 함께 뉴욕을 방문한 후 콩쿨 전 미리 예정되었던 연주를 위해 곧바로 독일로 떠난다. 7월부터 본격적인 미주 투어가 시작되고 10월에는 포트워스에서 우승 기념 독주회를 가질 예정이다. 인생의 가장 화려한 조명을 받는 시간, 그가 남긴 것은 승리의 짜릿함이 아니라 음악의 위대함, 진실과 위로였다.
“평화로이 쉬어라, 모든 영혼이여/두려운 고통 다 겪고/달콤한 꿈도 끝난 영혼들/삶에 지쳐, 태어남이 없이/ 이 세상에서 떠나간 사람들/ 모든 영혼은 평화로이 쉬어라” (슈베르트 ‘위령가’ 중에서)
글 송혜영
피아니스트, 음악박사
웨더포드 칼리지 Artist in Residence